서평: 김명희 2025, 『다시 쓰는 자살론』 그린비출판사

대학지성(2026년10월3일자)에 실린 저의 서평글인데, 텍스트로 옮겨 싣습니다.출전 "대학지성"에서 직접보기
자살을 다시 쓰는 일은 사회를 다시 묻는 일이다
최종덕 (독립학자, philonatu.com)
1. 개인의 죽음에서 사회적 고통으로
자살은 한 개인의 죽음이지만 그 죽음의 원인까지 개인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비판적 사회학자 김명희가 낸 『다시 쓰는 자살론』은 자살을 정신질환이나 심리적 위기의 결과로만 설명하는 관행을 넘어, 그 죽음을 낳는 사회적 조건을 묻는다. 이 책 제목에서처럼 자살론을 “다시 쓴다”는 것은 개인의 심리 차원이 아닌 자살자가 살아야 했던 사회 차원에서 자살의 문제를 다시 살피는 일이다.저자는 자살에 이르는 ‘사회적 고통’을 중요하게 다룬다. 사회적 고통은 개인적이고 의학적인 고통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통의 사회적 차원과 그것을 일으키는 사회적 힘, 그리고 그 힘이 인간에게 남기는 파괴적 상처를 가리킨다고 저자는 지적한다(25쪽). 전염병, 트라우마, 우울증과 자살도 이러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고통은 개인에게 나타나지만, 그 고통을 만드는 힘은 사회구조와 제도, 관계 속에 존재한다. 위기의 원인을 지적·정신적 특질에만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71쪽). 정신적 고통을 덜기 위해서도 사회구조의 개선이 필요함을 저자는 강조한다.(72쪽).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이러한 접근의 절실함을 보여준다. 책은 한국이 2003년 이후 OECD 자살률 통계에서 최상위 수준이며, 여성과 노인, 청소년의 자살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여성과 노인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약 세 배, 청소년은 약 두 배에 이른다(26쪽). 이 수치들은 개별 사례를 넘어 한국사회가 어떤 고통을 지속해서 만들어내는지 묻게 한다.저자는 기존 자살 설명의 한계를 짚는다. 첫째는 정신질환을 중심으로 원인을 좁혀 보는 생의학적 설명이다. 둘째는 자살을 경제위기의 부산물로 이해하는 경제적 설명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자살률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셋째는 자살 통계를 사회적 사실보다 담론의 구성물로만 취급하는 태도다. 통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비판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 비판이 실제 죽음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이와 관련하여 죽음의 문제를 생의학적 기준으로 재단하는 의료 환원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즉 사회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탈정치적으로) 오로지 개인의 정신의학적 수준에서 자살을 환원시켜 설명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자살 문제의 탈정치화는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 간호사와 교사의 자살, 탈북자와 성소수자의 죽음은 이러한 질문을 구체화한다. 무인가게에서 물건을 가져간 청소년의 영상이 공개된 뒤 발생한 죽음 역시 개인의 취약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노동조건, 차별, 낙인, 공개적 모욕과 관계의 단절을 함께 살펴야 한다.2 뒤르케임을 다시 읽는 이유
저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케임(Émile Durkheim, 1858~1917)으로 돌아간다. 『사회분업론』(1893), 『자살론』(1897),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1912)는 뒤르케임의 주요 저작이다. 그 가운데 『자살론』은 개인의 행위처럼 보이는 죽음을 사회적 사실로 연구한 작업이다. 그의 조카인 모스(Marcel Mauss, 1872~1950)와 함께 약 2만 6천 건의 자살 기록을 분류한 방대한 경험적 연구도 그 바탕을 이룬다.김명희의 책이 주목하는 것은 뒤르케임의 사회학적 자연주의다. 사회는 개인들을 단순히 더한 집합체가 아니다. 구리와 주석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청동의 단단함을 어느 한 구성물의 성질만으로 설명할 수 없듯, 사회적 결합은 개인에게 환원되지 않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 뒤르케임의 기본이다(91쪽). 개체가 아닌 사회적 집합성을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러한 관점은 비판적 실재론과도 연결된다.저자가 연결하는 비판적 실재론자로 잘 알려진 바스카(Roy Bhaskar, 1944~2014)의 비판적 자연주의는 이 연구의 실천적 지향을 분명히 한다. 과학적 연구의 목표는 앎에 그치지 않고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사회구조는 인간의 활동에 의존하면서도 개별 행위자의 의도와는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또한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의 심층 구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불의와 억압을 비판하고, 그것을 바꾸는 실천과 연결될 수 있다.뒤르케임의 자살 유형도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한다. 뒤르케임은 자살의 유형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그리고 숙명론적 자살의 4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적 유대가 약해진 상태와, 이타적 자살은 집단에 지나치게 통합된 상태와 관련된다. 아노미적 자살은 규범과 규제의 혼란에서, 숙명론적 자살은 과도한 규제와 억압에서 발생한다. 소외와 무관심, 집단에 대한 과도한 의무감, 삶의 기준을 잃은 혼란, 미래를 봉쇄하는 지배는 서로 다른 사회적 조건이다. 가미카제와 같은 사례는 과도한 집단적 의무를, 자유와 존엄을 억압하는 환경은 숙명론적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이 분류는 모든 죽음을 네 칸에 배치하기 위한 도식이라기보다, 삶과 사회의 관계를 묻는 도구로 읽는 편이 유익하다. 이란 여성의 자살이나 조선시대 과부에게 가해진 규범은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질서를 묻게 한다. 전쟁 이후의 외상과 자살 역시 각각의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한국사회에도 이러한 질문이 필요하다. 과거 ‘비관자살’이나 ‘염세자살’로 불리던 죽음은 1990년대 이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문제로 설명되는 경향이 강해졌다(153쪽). 그러나 이름을 바꾸었다고 사회적 원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군인의 자살에는 과도한 규제와 권위주의를 물어야 한다고 한다(157쪽). 성소수자의 자살에는 차별과 배제를, 학벌주의 교육체제 아래의 자살에는 경쟁과 서열화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여기는 관념 역시 가족 구성원들의 죽음을 이해할 때 검토해야 할 문제다. 자살론은 이렇게 사회정의의 관점으로 확장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3 5·18 항쟁의 죽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성취는 뒤르케임의 자살론을 한국사회의 5·18 경험과 연결한 데 있다. 고전 이론은 여기서 과거의 학설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폭력 이후에도 이어지는 죽음을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2009년의 「5·18 자살자 심리부검 보고서」는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추적하고, 1980년 국가폭력의 참혹한 경험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상적 경험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개별 사연의 나열을 넘어, 폭력 이후의 삶을 지속해서 제약한 사회적 조건을 밝혀야 한다. 저자가 심리부검을 넘어 사회학적 부검을 요청하는 이유다(182–183쪽). 나는 ‘사회학적 부검’이라는 저자의 표현에 크게 감응했다. 사회학적 부검은 개인의 해부학적 조사에 머물지 않고 개인이 살아온 역사적 사회환경을 ‘추적’하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죽음 이후의 원인 확인을 넘어, 삶의 시간과 관계를 따라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책에서 다루는 5·18 민주화운동에 연관된 자살자는 49명이다. 1980년대 25명, 1990년대 5명, 20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19명이다. 광주 항쟁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죽음은 이어졌다. 이는 개인의 자살을 한 사건의 즉각적인 결과로만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민중항쟁 이후의 억압과 낙인, 진실의 부정, 생활의 붕괴를 함께 보아야 한다.저자는 이를 숙명론적 자살의 관점에서 읽는다. 항쟁 이후 개인의 자살은 미래가 무자비하게 제한되고 삶의 욕구가 억압되는 조건에서 발생한 죽음이라는 것이다(193쪽). 정치적 억압과 폭력이 누적될수록 그러한 죽음의 조건도 깊어진다(217쪽).동시에 저자는 ‘저항적 자살’의 의미를 살핀다. 이는 이타적이거나 희생적인 자살과 닮은 면이 있지만, 지배세력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을 갖는다. 진실이 거부되는 정치적 학살 앞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호소하는 행위다(195쪽).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과 죽음을 미화하는 일은 구별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음이 저항 공동체의 형성과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왜 다른 호소의 길이 막혔는지를 묻는 일이다. 저자는 정치적 억압에 대응한 저항적 자살이 저항 공동체를 형성하고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지적한다(217쪽).김명희의 예리한 분석을 읽으면 “5·18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217쪽). 사건을 과거에 두고 보상과 의료적 치료로 마무리하는 틀은 충분하지 않다. 정의와 진실, 기억의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 치유가 필요하다(218쪽). 저자 김명희는 자살론을 통해 국가폭력의 긴 시간을 드러낸다.
4 거대한 유가족 사회가 묻는 것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도 이어진다. 이 책에서 지난 10년간 자살 유가족의 규모는 약 130만 명으로 제시되는데, 한국을 ‘거대한 유가족 사회’라고 부른다(220쪽). 이 표현은 특히 오래 남는다. 자살을 사망자의 수만으로 파악하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고통의 범위를 놓치기 때문이다.여기서 가족은 생물학적 혈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입장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함께 살아온 사람, 돌봄과 책임을 나눈 사람,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도 죽음의 영향을 받는다. 가족을 사회적 관계로 이해하는 관점은 유가족의 범위와 사회의 책임을 함께 넓힌다는 저자의 생각은 반드시 한국정치의 현실로 실현되어야 한다(225쪽).5·18 항쟁 이후에 따른 자살 유가족의 고통을 생애사로 살피는 작업도 그러한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남은 사람의 생활과 관계, 기억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따라가야 한다. 유가족의 고통은 사적인 슬픔인 동시에 국가폭력과 사회적 외면이 지속되는 자리이기도 하다.이태원 참사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해 159번째 희생자로 불린 생존자의 죽음은 재난의 시간이 사건 당일에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2023년 서이초 교사의 죽음 역시 그 이전 10년 동안 약 160명의 교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회적 아픔을 드러냈다. 간호사들의 죽음도 직장 내 괴롭힘, 과도한 노동조건, 위계적인 조직문화와 연결된다.이러한 개인의 죽음을 개별적인 부적응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과 역량을 훼손하는 현실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인권참사이자 사회적 재난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 김명희의 강한 주장이다.(460쪽). 자살예방은 인권과 연대에 기반한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458쪽). 이는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회적 연대를 회복하는 정치적 시민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5 살아 있게 하는 정치에서 존엄하게 사는 정치로
책의 후반부는 자살을 생명정치의 문제로 확장한다. 자살은 생명현상이면서 정치적 현상이며, 사회개혁의 과제와 맞닿아 있다(461쪽). 살아 있는 몸을 관리하는 일만으로는 삶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이 논의를 이해하는 데 ‘조에’zoe와 ‘비오스’bios의 구별이 도움이 된다. 조에는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공통된 생물학적 생명을, 비오스는 개인이나 집단이 영위하는 사회적·정치적 삶의 형태를 뜻한다. 이 구별을 체계적으로 전개한 인물은 푸코의 생명정치 논의를 계승하고 확장한 아감벤이다.푸코는 근대 권력이 인구와 건강, 생물학적 생명을 관리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아감벤은 정치적 공동체의 보호에서 배제된 존재가 ‘벌거벗은 생명’으로 놓이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살아 있으나 권리와 소속을 박탈당한 삶이다. 이 관점은 생존의 유지와 존엄한 삶의 보장이 같은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나아가 저자는 푸코와 아감벤을 이으면서 면역학을 정치철학에 도입한 생명정치철학자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 1950 - )을 통해서 생명정치의 긍정적 전환 가능성을 모색한다. 비상사태와 범죄, 재난에 대응하는 법률과 제도를 보더라도 생명정치는 현대사회의 중심에 있다(462쪽). 문제는 생명을 지배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대할 것인지, 생명의 고유성과 상호의존성이 정치를 이끌도록 할 것인지다. 인간을 관리 항목으로 분할하는 대신, 각자의 삶을 인정하는 정치가 필요하다.저자는 이러한 논의를는 뒤르케임의 도덕과학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도덕을 단순한 개인의 기호로 보지 않고 탐구 가능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도덕실재론과 윤리적 자연주의가 그 바탕을 이룬다(468쪽). 그 실천적 핵심은 도덕적 개인주의다.도덕적 개인주의는 이기적 개인주의나 공리주의적 계산과 다르다. 인간의 인격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타인의 권리와 인격을 자신의 것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회적 원리다. 개인의 존엄이라는 가치도 고립된 개인이 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분화와 발전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사실이다. 차이와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유기적 연대가 이러한 개인주의를 가능하게 한다.
6 자살예방의 중심에 돌봄을 놓다
이 책의 논의는 결국 인권과 돌봄으로 모인다. 자살을 의료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권과 연대에 기반한 사회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지향하는 책의 방향성이다(458쪽).저자 김명희가 소개하는 2019년 유엔의 정신건강 관련 보고서도 권리에 기반한 접근을 강조한다. 정신의학적 처방을 넘어 불평등, 주거의 부재, 빈곤과 차별을 살피고, 모든 사람의 인권과 지역사회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521쪽). 자살예방의 범위가 진료실을 넘어 주거와 노동, 교육과 복지의 영역으로 넓어지는 셈이다.저자는 뒤르케임의 정의와 박애라는 두 의무를 분배적 정의와 관계적 정의로 풀어낸다(528쪽).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공정하게 나누는 일과, 서로를 존중하며 관계를 맺는 일이 함께 요구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돌봄은 이 둘을 연결한다.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에 응답하는 사회적 연대의 가치이기 때문이다(528쪽). 돌봄은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의 필요에 응답하려는 책임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개인의 선의에만 맡겨서는 지속되기 어렵다. 함께 돌볼 수 있는 제도와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책이 마지막에 제시하는 ‘함께돌봄’은 생명의 상호의존성과 공존을 사회의 원리로 삼자는 제안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세우는 생명정치가 필요하다. 바스카의 실천적 지향도 이 결론과 만난다. 자살을 심리분석과 의료적 처방으로만 해결하려는 제도의 한계를 넘어, 사회정의의 패러다임과 인권에 기반한 실천제도를 구체화해야 한다(534쪽). 죽음을 줄이는 일은 사람이 살아갈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7 한국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자살론
『다시 쓰는 자살론』은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논문 형식의 전문적인 논의가 많고, 사회학의 방법론에서 비판적 실재론과 생명정치까지 폭넓은 이론을 다룬다. 개념이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독자가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중적 서술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이론의 밀도가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그러나 이 전문성은 책의 성취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사회의 책임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자살을 사회적 사실로 읽어야 하는지 이론과 경험적 자료를 통해 설득한다. 고통에 대한 관심을 학문적 분석과 실천의 과제로 연결하는 힘이 있다.특히 뒤르케임의 『자살론』과 한국사회의 5·18 분석을 연결한 저자 김명희의 작업은 탁월하다. 고전의 개념으로 한국의 현실을 기계적으로 분류하는 데 머물지 않고, 국가폭력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삶과 죽음을 새롭게 보게 한다. 숙명론적 자살과 저항적 자살, 유가족의 사회적 고통에 대한 분석은 5·18을 끝난 사건으로 취급하는 시선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론은 현실을 밝히고, 현실은 이론의 의미를 넓힌다.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보이는 한국사회는 이 책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살을 개인의 질환과 선택으로만 설명하면, 우리 사회가 바꾸어야 할 조건은 계속 남는다. 치료와 상담을 제공하는 일에 더해 노동의 폭력, 차별과 낙인, 권위주의적 규제, 관계의 단절을 줄여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과 유가족의 권리를 보장하고, 정의와 기억에 기초한 치유의 길도 열어야 한다.저자 김명희는 죽음을 통해 사회를 묻지만, 그 질문의 목적은 삶을 지키는 데 있다.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놓고 사회학의 고전과 한국의 역사, 인권과 돌봄을 연결한 저자의 작업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시 쓰는 자살론』은 자살의 원인을 설명하는 책을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묻는 책이다. 한국사회가 그 질문에 응답할 때, 자살론을 다시 쓰는 일은 삶의 조건을 바꾸는 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겉핥기로 책을 소개했는데,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저자의 성실한 플롯 구성력과 진지한 데이터 처리에 있다. 자살률 세계최고라는 오명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문제임을 나에게 구체적으로 자각시켜준 책이다.

대학지성(2026년10월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출전 "대학지성"에서 직접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