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투르의 정치철학-존재양식12장
원저 : B. 라투르, 존재양식의 탐구 12장
실린 곳 : philonatu, philonatu

(한글판) 브뤼노 라투르 2023, 『존재양식의 탐구, 근대인의 인류학』 (황장진 번역) 사월의책. 742pp

(영어판) Bruno Latour 2013, An Inquiry into Modes of Existence: An Anthropology of the Moderns, Catherine Porter (tr.), Harvard University Press, 2013, 486pp

(불어판) Bruno Latour 2012, Enquête sur les modes d'existence: Une anthropologie des Modernes. La Découverte




존재양식 12장 해제와 해석 (인터넷 자유판)

라투르의 정치철학


최종덕 (독립학자, philonatu.com)




이 원고는 오로지 이 책 『존재양식의 탐구』 한 권만을 위한 해제본임을 밝힙니다.



『존재양식의 탐구 : 해제와 해석』 읽는 지도

①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의 책, 프랑스 원판(2012)과 영어판(2013)이 출간되고 10년 만에 한글판(2023)이 나왔다. <해제와 해석> 작업이 원래 더 오래 걸릴 일이었는데, 2023년 12월 전문성이 돋보이는 한글 번역판 출간 덕분에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② 『존재양식의 탐구』 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전체의 기초 개념들을 설명하고, 2-3부에서는 정치, 법, 경제 등 구체적인 준주체 존재양식을 다룬다. 1장에서 16장까지 각 장 별로 해제 원고를 차례로 실었다.

③ 챕터 별 서술이 적절한 지 문제를 따질 수 있는데, 이 원고는 이 책 『존재양식의 탐구』한 권만을 위한 <해제>라는 성격에 충실하고자 그렇게 했다.

각 장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의 특성 때문에 개별 장을 따로 읽기가 힘들 수 있다. 개념에 따라 문단을 나누었는데, 문단을 연결하는 비가시적 연결망의 노드들을 체현하려는 시도를 했다.

④ 이 책은 들뢰즈의 몇몇 개념과 라투르 자신의 책들(생태 저작물 이전 시대) 『근대인』,『실험실』,『동맹』,『판도라』 등에서 제안된 용어를 어느 정도 이어받고 있지만 단순 계승이 아니라 변신된 번역화의 작품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도 상당히 압축적이다. de Vries의 책(2016)과 관련 해설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⑤ 인용 출처는 괄호 안 쪽수 (123)로만 표기했는데, 영어판 출처는 숫자 앞에 * 표시(*124)로, 프랑스 원본의 쪽수 표기는 (** 124) 로 표기했다.




라투르의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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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식은 앞 장에서 말한 종교양식과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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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의 음조(무늬; 톤, 뉴앙스)로 발화하듯 말하는 방식이 있다는 점에서 종교양식과 같다.

2. 자신의 KEY로 다른 양식들을 해석하려 한다.

3. 준주체Quasi Subject를 생산한다. 준주체란 주체가 결코 아니지만 주체처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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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식의 대조 – 중용의 정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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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는 제도intuition나 그 영역에서 대조contrast적인 성질들이 서로에게 겹쳐 있는 모습을 보인다.(481)

2. 자유언론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3. 정치적 자율성, 법치주의, 대의 정부, 시민적 자유가 정치양식의 최고선 목록이다.(482) 이런 점에서 정치 양식에서 근대인의 기여는 인정될 수 있다.

4. 정치는 참과 거짓이라는 진리명제에 제한된 집합체는 아니다.(483)

5. 민주주의는 지식이 아니라 습관 양식의 산물이다. 지식만으로는 정치적 "자유"의 섬세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없다.(485) 민주주의의 습관 양식[HAB]이 중요하다.

6. 정치가 감성의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편협하고 군주적인 비합리성 권력에 빠지게 할 수 없다. 이성을 통한 합리적 보편성의 이상주의 이상으로 감성에 몰입된 정치 권력 역시 더 심각한 많은 오류를 낳는다.(485) 그런데 근대인은 이러한 정치적 이성을 평평하면서 깨끗하게 만들기 위하여 직선적인 언어를 통해 정치를 심리학이나 경제학과 같은 과학으로 환원시키기를 원했다.

7. 정치 양식은 이런 양단의 갈등 속에서 감성적이지만 비합리적이어서는 안 되고 이성적이지만 합리화의 제한되어서는 안 되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정치양식은 이 둘의 대조를 '직선적이지' 않은 (배중율이 아닌 혹은 더블클릭이 아닌) 화법으로 풀어갈 수 있다고 라투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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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클릭으로 정치 양식을 누르면 결국 대표성의 위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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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를 직설적 화법으로 만든 것이 더블클릭의 양식[DC]이다. 여기서 [DC]는 정치적 이성의 로고스를 구현하려는 의도처럼 여겨진다. 이런 의도는 정체에서 불투명성the opacity을 줄이고 대표성the representations을 늘리려는 데 있을 것이다.

2. 정치를 로고스로 접근한다면 거짓말의 정치쇼만 보이고 정치의 불투명성이 증가되고 정치의 대표성 (예를 들면 정치적 대표자 혹은 의회 정치인의 구실) 은 오히려 점점 축소하게 된다.(487) 라투르는 이를 대표성의 위기crisis of representation라고 표현했다.

3. 대표성의 위기란 정치인과 대중들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정치 엘리트와 군중이 유리된 상태다. 이런 상태는 과학으로 위장된 그들만의 왕국My Kingdom for a Science으로 상징된다고 한다.(488, *334)

4. 정치는 처음부터 진리성 명제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라투르는 정치를 그 탄생에서부터 진리성과 합리성의 범주로 간주하지 않는다. 정치에서 합리적 대표성 자체를 절대 기준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합리성의 기준은 일반 철학적 개념과 다르지만 말이다. 쉽게 말해서 근대인이 만든 인공적 합리성의 기준으로 정치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5. 한편 사람들은 정치에 대하여 대표성과 투명성 그리고 과학의 이상과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 근대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희망하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라투르의 주장이다. 물고기에게 자전거가 필요 없듯이 여자에게 남자가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스타이넘(Gloria Marie Steinem, 1934~ )의 슬로건을 그대로 인용하여 라투르는 근대인이 만든 하나의 정치적 인공물an artifact을 실재로 착각하는 것이 바로 대표성의 위기라고 한다.(489; *335)

6. 정치에 대한 희망과 이상이 접목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의 정치를 대하는 대중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 크게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 역시 대표성의 위기라고 말한다.

7. 정치양식에서 대표성 위기는 실제로 종교 존재양식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라투르는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에서의 위기 상황의 토대가 정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이다. 에를 들어 정치와 종교의 교차[POL.REL]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혼합은 자주 있었다. 그런 정치 종교의 혼합은 최악의 정치신학을 낳았다. 오늘날에도 교회나 절에서 정치 권력을 좌지우지 하려는 오도된 시도들이 횡행하게 된 이유이다.(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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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이성에 대한 지나친 과장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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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객관화와 과학화라는 명분으로 정치를 도려낸다면 그 순간 정치는 박제화plastination된다. 정치가 정보, 과학, 경영, 권력의 도구로 박제화될 경우 정치의 민주주의도 멀어진다고 라투르는 강조한다,.(489)

2.정치는 진실과 거짓의 명제 체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권력 투쟁의 문제라는 점으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합리성의 양식이 아니라 위선, 거짓, 기술, 권력투쟁, 폭력이 삶의 형식으로 자리잡은 비이성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정치를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3. 이런 논의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철학이 마키아벨리즘이다. 우리는 마키아벨리즘의 유혹에 들어 정치에서 합리성을 포기해도 좋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착각은 비이성이 과대 평가된 결과이다. 비이성의 정치양식이 중요하지만 정치양식이 비이성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님을 라투르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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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지향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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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는 항상 객체-지향적object-oriented이다.(492) 정치제도는 사실의 문제로부터 관심의 문제로 변이되었다.

2. 객체-지향성이란 정치제도에서 주변의 사물들은 구부러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이 있어서 구부러진(휘어진) 정체제도가 생겼다는 뜻이다.(493) 그래서 항상 사물 중심으로 정치를 다루어야 한다. 정확히 말해서 인간만이 아닌 사물도 정치 양식의 행위자로 될 수 있다는 뜻이다.

3. 인간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공동 세계를 라투르는 코스모스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라투르의 정치철학을 코스모폴리틱스라고 한다. 코스모폴리틱스 개념은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지 않지만 그의 코스모폴리틱스 정치철학은 객체-지향 정치와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투르의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는 라투르 자신이 밝혔듯이 과학철학자 툴민(Stephen Toulmin, 1922-2009)의 코스모폴리스cosmopolis에서 따온 것이다. 툴민에서 코스모폴리스는 자연세계를 지시하는 코스모스와 사회세계를 지시하는 폴리스의 합성어다. 즉 자연과 사회, 자연과 인간의 통일된 연결망oneness으로서 정치를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자연은 문화적인 것과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문화 역시 자연으로부터 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툴민에게서 객관은 주관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으며 나아가 인간의 이성도 절대 객관적 도구일 수 없다고 한다. 이성과 감정, 남성과 여성의 지배적 이분법, 자연과 인간, 엘리트와 대중, 통일권력과 다중성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난 것이 진정한 이성resonablenes이라고 툴민은 말한다.

툴민의 이성은 데카르트의 이성rationality와 다름을 강조했다.(툴민 1997, 147) 이 점에서 툴민의 철학구도와 라투르의 정치 양식은 상당히 비슷하다.


스티븐 툴민(이종흡) 1997, 코스모폴리스: 새로운 천년을 향한 인문주의자의 제언
Stephen Toulmin 1990, Cosmopolis: The Hidden Agenda of Modern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필자는 이 책에 대한 해설을 필자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클릭하시면 이동됩니다)



라투르 자신이 고백했듯이 툴민의 철학이 라투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쾰른대학 2015년 특강 Politics and Religion: https://youtu.be/jgyrnecHWMg?si=aQ7vGrObxDXhr5_E)

4. 아인슈타인 중력이론처럼 절대공간이 먼저 있어서 그 공간 안에 들어온 사물(행성들)이 중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물(행성)이 먼저 있어서 사물의 질량이 중력을 받아 휘어진 공간을 생성하는 이론과 같다.

5. 이러한 객체지향적 정치object-oriented politics는 사물 혹은 이슈가 먼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정치양식이 존재한다는 뜻이다.(*337)

6. 라투르는 중력 물리학의 비유에 맞춰서 정치는 고정된 사실들fact을 직설적으로 해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관심concern들을 구부러진 어법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한다.(493)

7. 획일화된 정체제도를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물에 따라(다양한 이슈나 쟁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객체지향되는 정체 제도의 변형이 있을 뿐이다.



(객체-지향 용어에 대한 참고 사항)
1. 라투르는 객체-지향이라는 표현을 정보과학에서 따왔다고 밝혔지만, 객체지형을 설명하는 방식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아이디어를 따르고 있다.(493)
2. 한편 라투르의 해설서를 출판하면서 객체지향 존재론을 정립한 하먼(Graham Harman)이 말하기를 객체-지향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정보과학에서 함수와 상속(이어받기) 개념을 활용한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Harman 2017)


Graham Harman 2017, “INTRODUCTION”, Object-Oriented Ontology: A New Theory of Everything. Penguin Random House,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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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우리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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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는 “우리”와 “그들”의 전선을 만든다. ‘우리’를 통해 다수multitude를 하나unity로 바꾸려 하고, ‘그들’을 통해 하나에서 다수로 바꾸기도 한다.(494) 정치는 ‘우리’에서 응집되고 ‘그들’에서 분산된다.

2. ‘우리’를 통해 다수를 하나로 만들지만 하나에 회집되지 않은 타자를 ‘우리’ 바깥에 ‘그들’로 남겨둠으로써 하나를 다시 다수로 변화시킨다.(500)

다수에서 하나로, 하나에서 다수로 변화하는 과정을 라투르는 번역/배반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다중의 고통과 불만이 생긴다고 말한다.(498)

3. 물론 ‘우리’의 확장을 낳을 수도 있다. 반면 그렇게 확장된 회집은 배신의 반복을 통해서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또 다시 역전되어 축소될 수 있다.(500) 그리고 계속 또 다시 갱신의 반복을 통하여 타자를 포함(포용)한다면 회집은 다시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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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원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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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의 "원"의 양식은 실체로서 생존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생존을 추구함으로써만 생존가능하다.(499)

2. "원"은 매번 반복되지만 반복될 때마다 매번 새로 시작하는 것과 같다. 불행하게도 정치 존재자는 새로움 없이 박제된 반복행위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가 바로 <원>이 실체화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3. 우리의 최선은 "원"의 정치적 존재자들을 갱신의 반복을 생성하는 [습관]의 존재양식으로 연결시키는 일이다.[HAB.POL] 이런 연결을 통해 정치의 민주주의라는 습관 양식[HAB.POL] 이 생기고 이로부터 진정한 자유가 뿌리내린다.(500)

4. 불행히도 정치적 "원"의 양식은 신성한 갱신이 아닌 막혀가는 불통으로 반복될 수 있다. 이런 불통은 (i)갱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ii)다중의 대표성을 무시하고 (iii)규칙을 따르면 안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깨부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다.(500)

5. 민주주의 습관 양식이 사라지고 정치는 기만과 위선으로 된다. 라투르는 이런 정치적 기만과 권력의 불균형을 권력의 신비에 빠진 것이라고 비유한다.(501)

6. 라투르는 근대인의 체제인 과학, 기술, 종교의 존재양식 그 어느 것 이상으로 정치 양식이 더 나쁜 방향으로 틀어졌다고 말한다.(500-1)

7. 근대인들은 그들이 만든 존재자를 존중했지만 그 존중의 강도는 존재양식마다 다르다. 과학을 가장 크게 존중하고, 기술을 과학보다 약하게 존중하며, 종교적 신을 그 보다 더 약하게 존중하며, 나아가 신성divinities에 대한 존중은 아예 없었던 것이 근대인의 특징이라고 한다.

8. 그런 근대인조차 정치적 <원>의 양식을 구현하지 못했고 오로지 마키아벨리적인 정치적 형용사만을 확대시켰다.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마키아벨리 식의 정치적 존재자들은 만용에 가득한 곡예사로 되어 그물망 시설도 없는 극장의 무대 천정에서 뛰어내리고 있다(501)



"원"은 5장에서 설명되었다. 5장에서 제안된 원 개념을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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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식에서 원circle이란, 정치적 말하기 (5장에서 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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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설적 말하기처럼 보이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구부러진 말하기가 원이다.

2. 구부러진crooked 말하기가 내부적으로 반복되는 성질인데, 라투르는 이런 성질을 자기순환성autonomy이라고 이름붙였다. (번역서에는 "자율성"이라고 했는데 그 어조에서 긍정 의미를 보이는 자율성 대신에 부정 의미를 담은 자기순환성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3. 자기순환성이라는 점에서 정치양식을 "원"circle이라고 라투르는 표현했다.(203)

4. 정치 양식은 항상 자신의 언어로 상대에 대하여 참과 거짓을 판정해버린다는 점에서 자기 회귀적인 원의 양식이다.(204)

5. 물론 정치적 말하기가 없으면 집합체(집단)도 없다. 정치는 집합체를 통해서 구현된다.(204) 정치적 말하기가 위선의 집단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 자체를 근대인은 원하지 않는다.(205) 이점은 라투르 정치철학에서 아주 중요하다.

6. [정치적 말하기]가 [더블클릭]으로 연결되면 나쁜 괴물이 만들어진다.(205) 더더욱 정치양식 자신의 원 안에서 투명성과 진실을 추구한다는 위선된 명분을 겉으로 내세우지만(205) 실제로는 정치현장의 고함과 조롱, 모략과 아부, 배신과 이탈, 허세와 조작, 거짓과 위선들을 더 키운다는 뜻이다.(204)

7. 정치적 말하기는 “스스로를 대변하는 사실”facts that speak for themselves로 표현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원의 존재양식이다.(*144)

8. 정치 양식의 ‘원’(그들만의 권력 서클)에 대하여 12장 해제에서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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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 근사법과 공백의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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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적분학은 원호의 곡선을 무한소에 가까운 접선의 직선으로 대체하는 근사법이다. 이런 근사법을 정치적 <원>에 적용하면 곡선에 숨겨진 공백hiatus은 무참히 삭제되고 만다. 그래서 정치적 존재자들은 그들 스스로 충실하게 말한다고 떠들지만 <공백>을 놓치면서 “옆길로 새고” 만다. 여기서부터 거짓과 진실이 혼동되는 범주오류가 생긴다고 한다.(502)

2. 정치적 바통(baton; 리더쉽)은 곡선의 공백 안에 있는데, 공백이 사라지면서 정치적 갱신과 연결망도 같이 없어지는 슬픔이 있다.

3. 정치 양식의 슬픔은 운명적이다. 슬픔을 날려버리고 싶지만 슬픔의 운명에 따라 우리는 그 안에서 정치적 의미를 어떻게든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운명은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생존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찾는 희망은 우리 삶의 생존이다.

- 미적분 근사법을 통한 근대인의 정치양식 -

Latour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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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식의 공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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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적 불연속성의 틈새는 두 가지 다른 공백으로 나타난다. (i)하나는 정치적 이슈(순간)가 다음 이슈로 넘어갈 때 억지로 두 사건(이슈, 순간)을 분리했기 때문에 생긴 공백이다. (ii)다른 하나는 앞서 보여준 대로 미적분 근사 접근법으로 인해 곡선을 직선으로 대체한 데 따른 사라진 곡선의 공백이다.

2. 이성의 정치를 실현하고 싶었던 플라톤 철학자들은 당시의 소피스트들을 진리를 무시한 집단으로 조롱했지만, 라투르는 이런 철학자들의 조롱이 정치에서조차 이성의 위상을 절대기준으로 잘못 놓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정치 양식은 철학의 이데아와 달리 오히려 길거리 소피스트들 말 속에 숨겨진 공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라투르는 거꾸로 말한다.(505)

3. 정치적 이슈와 이슈 사이 공백에는 보이지 않는 곡선의 진리가 있으며, 그 공백은 단순 공백이 아니라 상황1과 상황2를 연결하는 번역 작업 행위를 수행한다.(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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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시민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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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적으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508)

2. 권력의 신비에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초월적이라는 이름으로 불통의 합리화를 시도하는 정치적 오류를 소환한다.(510)

3. 합리화된 거짓과 획일화된 제도가 아니라 다양한 사물(이슈, 상황, 쟁점, 순간)을 중심으로 객체-지향의 정치 양식을 추구한다.(*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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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식의 교차와 혼동 오류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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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시의 연쇄[REF]와 정치적 "원" [POL]은 서로에게 통약 불가능하며 서로 혼동되지 말아야 하지만, 현실 정체에서 이 둘은 같은 공간에서 활용되고 있다.

2. 예를 들어 과학 문제를 풀 때 지시의 연쇄라는 양식을 사용하지만 시를 읽을 땐 정치적 "원"을 사용한다. 과학문제를 풀 때 정치적 원의 양식을 사용하면 영점으로 평가될 것이고, 시를 읽을 때 지시의 연쇄 양식을 사용하면 시의 상상력으로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3. 이런 점에서 지시의 연쇄 양식과 정치 양식은 혼동되지 않도록 활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4. 라투르는 이를 필요에 따라 직선으로 말할 수 있고 어떤 때는 구부러지게 말할 수도 있다고 표현하면서, 과학자의 이성적 아포데익(명제)과 정치인의 감성적 에피데익(과장법)이 같이 활용되는 정치 양식의 중용을 언급했다.(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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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원의 습관 양식 - 정치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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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은 집합체를 형성하게 해준다. (511)

2. 집합체의 대표자가 나타나며 자기 집합 내의 구성원들을 추종하게 만든다.

3. 그러다가도 그 집합체는 해체되기도 한다.

4. 이런 정치 양식의 모습은 정치가 마치 유령을 품고 있는 듯 여겨질 정도다.

5. 이 모습은 정치와 조직organization이 교차[POL.ORG]된 정치체Body Politic같으며 이는 <원>양식의 끊임없는 운동 과정에서 나타난다.(513)

6. 정치의 유령을 어떤 사람들은 사회라는 말로 대체하려고 하며, 그런 방식으로 사회적인 것의 한 가지 외양으로 정치를 대체하는 순간 정치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사회는 존재양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는 모든 존재 양식들이 융합된 연결망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양식으로 될 수 없다는 뜻이다.(514)

7. 정치는 반복적이지만 결코 관성이 아닌 습관의 양식이다. 정치는 갱신의 연결망 안에 존재한다. 습관은 갱신의 반복이지만, 관성inertia은 갱신 없는 무의미한 반복이다. 정치 양식과 습관 양식의 교차는 관성이 아니라 갱신이라는 뜻이다.

8. 정치적 존재자에서 유령은 대중들의 작은 초월을 의미한다. 대중의 비가시적 유령은 "원" 양식 안에 있다. 그래서 직선의 언어보다 구부러진 언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구부러진 언어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517-8)

9. 근대인은 구부러진 언어 대신에 직선의언어로 정치의 "원" 양식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런 결과물은 라투르 표현에 따르면 하나의 괴물이었다. (518) 괴물, 몬스터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라투르의 생각이다.괴물도 비인간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젝이 말하는 좀비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괴물을 합리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영혼의 실체를 만드는 데 있다.

10. 우리는 합리화된 괴물의 정치가 아니라 진짜 이성적인(합리적인) 것과 "원"의 비가시적 정치체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아리아드네의 실(단서)을 희망한다.(518)


1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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