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투르의 기술철학 - 8장 해제
원저 : B. 라투르, 존재양식의 탐구
실린 곳 : philonatu, philonatu

(한글판) 브뤼노 라투르 2023, 『존재양식의 탐구, 근대인의 인류학』 (황장진 번역) 사월의책. 742pp

(영어판) Bruno Latour 2013, An Inquiry into Modes of Existence: An Anthropology of the Moderns, Catherine Porter (tr.), Harvard University Press, 2013, 486pp

(불어판) Bruno Latour 2012, Enquête sur les modes d'existence: Une anthropologie des Modernes. La Découverte



라투르의 존재양식 8장
라투르 기술철학, 해제와 해석

- 인터넷 자유판 -



최종덕 (독립학자, philonatu.com)



이 원고는 오로지 이 책 『존재양식의 탐구』 한 권만을 위한 해제본임을 밝힙니다.



『존재양식의 탐구 : 해제와 해석』 읽는 지도

①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의 책, 프랑스 원판(2012)과 영어판(2013)이 출간되고 10년 만에 한글판(2023)이 나왔다. <해제와 해석> 작업이 원래 더 오래 걸릴 일이었는데, 2023년 12월 전문성이 돋보이는 한글 번역판 출간 덕분에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② 『존재양식의 탐구』 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전체의 기초 개념들을 설명하고, 2-3부에서는 정치, 법, 경제 등 구체적인 준주체 존재양식을 다룬다. 1장에서 16장까지 각 장 별로 해제 원고를 차례로 실었다.

③ 챕터 별 서술이 적절한 지 문제를 따질 수 있는데, 이 원고는 이 책 『존재양식의 탐구』한 권만을 위한 <해제>라는 성격에 충실하고자 그렇게 했다.

각 장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의 특성 때문에 개별 장을 따로 읽기가 힘들 수 있다. 개념에 따라 문단을 나누었는데, 문단을 연결하는 비가시적 연결망의 노드들을 체현하려는 시도를 했다.

④ 이 책은 들뢰즈의 몇몇 개념과 라투르 자신의 책들(생태 저작물 이전 시대) 『근대인』,『실험실』,『동맹』,『판도라』 등에서 제안된 용어를 어느 정도 이어받고 있지만 단순 계승이 아니라 변신된 번역화의 작품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도 상당히 압축적이다. de Vries의 책(2016)과 관련 해설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⑤ 인용 출처는 괄호 안 쪽수 (123)로만 표기했는데, 영어판 출처는 숫자 앞에 * 표시(*124)로, 프랑스 원본의 쪽수 표기는 (** 124) 로 표기했다.





8장 기술 철학: 기술의 존재양식,
물질화된 기술에서 스피릿을 회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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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및 변신의 존재양식(시, 예술 등)에 대한 라투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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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존재론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 종교를 멸시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다."(312) - 종교를 멸시하는 태도가 근대인의 오만이라는 생각을 라투르는 표현한 것이다.(#)

2. 변신의 존재자들을 조작하는 사람들의 위험한 오염으로 인해 변신의 존재자들이 회의적으로 취급되어 왔던 근대의 관념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라투르는 말한다. 그러나 라투르는 인류사를 통털어 발명된 수많은 도구들이 우리 삶을 혼란에 빠트릴 정도로 지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라투르는 말한다. 이러한 현실을 인지한다면 변신의 존재자를 무시하거나 회의적으로 보는 편견을 삘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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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철학의 문제점 기술의 불투명성을 놓치는 근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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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객관적 지식에 관한 근대인의 책이 1,000권이 있다면 기술을 성찰하는 책은 10권도 안 될 정도로 기술에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고 본다.(313) 기술의 도구를 사용하면 상당히 편리하다는 생각 외에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313)

2. 기술이 지니고 있는 생경함(기회마다 새로움이 생기는 것)과 편재성 그리고 정신을 the strangeness, the ubiquity, and yes, the spirituality of technology 근대인은 놓치고 있다고 라투르가 지적한다. 근대인 자신들의 이런 실수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 근대인의 더 큰 문제라고 한다. 여기서 기술의 정신(한글본에서는 정신 대신 “영성”으로 되어 있음)이란 기술이 지닌 보이지 않는 창조성과 다변성 등을 말하는데 이런 창조성과 다변성을 라투르는 다양각색의 불투명성sumptuous opacity이라고 표현한다.(*210)

3. 기술이 지닌 다양각색의 의미를 대부분 놓치고 단지 기술이 지닌 편리성이라는 의미에만 기대어 있는 근대인의 문제점을 라투르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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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양식의 초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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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물을 측량하여 만든 지도의 표기는 이미 초월적이다.(*210) 라투르는 이런 초월을 작은 초월mini-transcendence이라고 했다. 여기서 초월성이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지명과 그 위치를 표기(수치화)하면서 실물과 다르지만 지도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잘 표상해주도록 하는 등 변형의 폭을 증대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지도제작자가 지도를 표기하면서 실물의 객체를 죽은 상태로 두지 않고(객체를 객체 그대로 표상할 수 없다는 뜻에서) 다양각색의 어떤 관계들로 연결되게끔 한다는 점에서 객체를 넘어서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라투르 원문에서는 첫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로 첫째 의미와 둘째 의미는 서로 분명히 구획되지는 않는 듯하다.

2. 재판소 기록실의 수 천 쪽 기록서류들이 아무리 많아도 배심원들에게 직접 건네는 단 한 줄의 질문지가 더 초월적이라는 표현은 아주 흥미롭다. 판결 현장에서 관련 소송 문서는 판결에 결정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배심원들의 마음을 호소하는(읽는) 질문지도 중요하다고 한 점이다. 즉 초월성이란 객체적이고 계량화된 사물을 넘어서 있다는 뜻이지 경험을 넘어선 초험超驗이라는 뜻은 아니다. 라투르가 말하는 초월성은 경험의 깊이를 더 강조한 셈이다. 예를 들어 종교적 기도의 사례를 들어보자.

3. 기도는 초월적이라고 라투르는 말했는데, 여기서 초월적이란 신비주의 차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기도로 말할 수 있다는 뜻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해설자가 “추정”이라고 말한 이유는 라투르도 이 부분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지 않아서 각주자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종이로 만든 인형 캐릭터들도 초월적이다. 케릭터라는 수식어 자체가 이미 실물을 넘어서 있다는 점에서 초월적이다.

5. 이렇듯 변신의 존재양식은 그 이상으로 초월적이다.

6. 세계, 다중우주는 순환하는 초월성으로 가득차 있다고 했는데,(315) 이 세계의 해석가능성이 다양하고 다중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7. (각주자 강조점) 초월성이란 객체(사물이나 대상)를 묘사한 기호, 기술, 해석, 인형등이 해당 객체를 도약하여 큰 상상력의 공백을 형성하는데, 그렇게 형성된 결과를 초월성이라고 한다. 더 쉽게 말해서 플라톤이나 헤겔의 철학처럼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초월성이 아니며 종교에서 말하는 신비주의 초월성도 아니라 가장 경험적이지만 언어로 표현하기에 쫒아가지 못하는 탈기호적 경험 영역을 초월적이라고 라투르는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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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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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월성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듯이 내재성에 대한 오해가 가능하다. 이런 오해는 근대 사조의 영향력 때문으로 주석자는 본다.

2. 내재성은 선천적native이라는 뜻이 아니며 부연된 무엇이다.-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이지만, 선천과 후천으로 구분되는 것만은 아니다. 내재성은 특정 존재양식에 의존한다. 내재성이란 관계와 연결을 맺기 이전의 형이상학적 상태다. 그런 내재성을 선천적이라고 근대인은 간주했는데, 그런 생각이 바로 근대인의 오류이다. 실제로 내재성은 선천적이지 않고 후천적으로 부가된 것으로 조심스럽게 해석한다. 내재성 개념은 다른 해설서에서도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아서 각주자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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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존재양식, 경험의 경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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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 양식은 마법, 종교, 과학, 철학의 존재양식과 적정성titrate을 갖는 존재자이다.(316)

2. 근대인은 기술의 궤적을 선형적이고 예측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술의 궤적은 근대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직선적이지 않다. 그래서 파악하기도 어렵다.(322)

3. 경험을 경험해야 하는 과정이란 무엇인가? - 경험은 평범한 듯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희소하다. 평범하다는 것이 개인의 차원에서 그런 것이라서 나의 평범함은 타인에게 희소하며 그 역도 그렇다. 그래서 예측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결코 알 수 없게 된다.

4. 평범하고 상시적일 것 같았는데, 어느덧 순간적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 기술양식의 특징이다. 그리고 투명한 듯 보이지만 결코 투명하지 않고, 한정된 듯 여겨지지만 계속 무엇인가로(미지의 미래로) 확장되어가는 것이 기술양식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양면의 모습을 왔다갔다하며 진자처럼 진동하는 것이 경험의 경험이라고 라투르는 말한다.(322) 정적인 완결상태로 결론지을 수 없는 모습이 바로 기술양식의 특징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4‘ 이 점으로부터 기술 존재양식의 긍정성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이 앞으로 전개되는 디스토피아의 부정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라투르는 말한다.(여기 8장에서는 그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지만 말이다.)

5. 이런 진동은 기술에서 과학으로,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사회로, 다시 사회에서 기술로 순식간에 연결되는 지그재그의 dazzling zigzag 경험의 맥락과 비슷하다.

6. 그래서 기술과 사회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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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술 연결망socio-technological ne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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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결합으로 비로소 기술체계가 형성된다.(317)

2. 어떤 기술이든 그것이 작동하려면 그 기술 주변의 다양한 것들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런 연결된 기술 존재양식을 [TEC.NET]로 표현한다.

3. 예를 들어 브르타뉴 해변의 녹조 현상 방지기술은 장비 제조사나 제조경비에 드는 예산안을 편찬하고 결정하는 지방정부 의회 혹은 농협조합 선거에 관심을 두거나 그들과의 격렬한 논쟁controvercies등, 주변의 다양한 상황들이 소소한 변수 수준이 아니라 위협적인 요소로 개입될 수 있으며, 이렇게 다양한 상황과 주제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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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궤적에서 경험의 우회로detour는 복잡하고 길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투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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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형의 다양성multiplicity of transformations - (예: 기술이 어떻게 사용될지 잘 모른다)
2. 결합의 이질성 the heterogeneity of combinations -(예: 기술은 단일한 목적으로 수행되지 않는다)
3. 인공적 정교함의 확장성proliferation of clever artifices - 인공적 기술 자체가 정교해지는 확산(?) -(13장에서 더 분명하게 설명하려 한다)

4. 취약한 기법skills이라도 그것들을 섬세하게 조립하는 가능성the delicate setups of fragile skills이 무한하다.

5. 기술은 경험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성숙된다.

6. 우회로의 구부러진 먼 길 때문에 재생산 존재양식을 짜맞추기(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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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궤적에서 경험의 우회로detour는 복잡하고 길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의 사례, 그리고 기술의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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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 치료 병동에서 의료기술만이 아니라 핵물리 기술이 깊게 관여된다.

2. 망치를 구성하는 나무로 된 손잡이와 쇠로 된 망치머리가 서로 잘 접합될 때 비로소 망치의 품질이 드러난다.

3. 지하철 차량과 다음 차량을 연결하는 고리식 강철 연결기(solid couplings)가 물질적 연결장치이듯이 프로그램, 컴파일러, 반도체 레이더 등의 연쇄설비로 연결된 지하철 자동화시스템도 결국 잘 계산된 "비물질적 연결장치"nonmaterial couplings인 셈이다.(322)

4. 기술의 뛰어난 창조성은 바로 물질화된 기술이 아니라 기술의 비물질적 연결장치로 인해 생겨난다.

5. 독창적 기술은 먼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핸드백 손잡이나 약병뚜껑의 안전틀기 등, 일상의 아주 가깝고 사소하지만 번뜩이는 발견에서 온다(323) 즉 있는 것을 찾아내면 된다는 점이다. 마치 손재주처럼 말이다.(There's a trick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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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존재의 조로의 칼과 더블클릭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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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의 존재는 조로의 칼처럼 Z를 내리치는 것이며 그리고 그런 지그재그는 기술의 효용성과 경제적 이익으로만 평가될 수 없다. 그러나 더블클릭이라는 근대인의 장치를 남용하면서 기술이 지닌 지그재그의 성질이 사라져가고 있다. 기술 존재양식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비예측성, 불연속성 등의 측면이 더블클릭에 의해 전부 소거되고 오로지 기술의 기능과 결과양식만 보이게 된다는 점을 라투르는 안타까워한다.(323)

2. 기술의 존재양식을 절단하는 더불클릭의 탬플릿(더블클릭이라는 만능장치)을 통해 기술은 마치 단순 정보 혹은 단순 형식의 매개체로 전락된다.

3. 그래서 기술을 평가하는 기준은 유용성이나 효율성effectivness으로 단정되어서는 안 된다.

4. 효율성과 기술의 관계는 객관성과 지식의 관계와 같다.(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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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존재양식과 변신의 존재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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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의 존재양식에서 기술은 우리가 그것을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익숙해지면 잠시 잊혀질 수 있다. 한편 앞 장에서 논의한대로 변신의 존재양식에서 변신은 정신생성적 요인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잊혀질 수도 없다.

2, 이런 점을 볼 때 기술의 존재양식은 변신의 존재양식의 한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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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지그재그가 사라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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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블클릭의 습관적인 유린 때문에 기술의 지그재그 궤적이 사라지곤 한다.

2. 기술과 기술의 후유증 사이의 혼동을 피해야 하는데, 기술의 존재양식을 기술이라는 동일성의 존재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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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파베르에 대한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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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모파베르는 "물질에 대한 효율적 행위"를 하는 인류로 알고 있다. 도구를 통해 자신의 욕구needs를 주조하는 조상 인류라는 호모파베르의 정의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기술이 인간의 욕구나 욕망을 채우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호모파베르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다고 라투르는 강조한다.

2. 즉 인간만이 도구사용의 행위자라는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3. 물질을 도구로서 효율성있게 사용한다는 생각도 잘 못 되었다고 라투르는 지적한다.(326)

4. 합리주의자들은 이런 생각을 "사물과 지성의 일치"adequatio rei et intellectus"라고 간주했다. 이런 합리주의로부터 우리는 물질을 상실하고 기술적 우회를 잃었고 영리한 책략 즉 기술 자체의 변신을 잃었다.(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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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대응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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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식론에서 지도와 영토 사이의 1:1 대응론이 근대인의 오류였듯이, 기술 존재양식에서 형식(형태)과 기능 사이의 대응이라는 효용성 이론도 근대인의 오류에 해당한다.

2. 기술은 인간 (특히 남성)의 소유물질이라는 혼동은 [REP.REF] 기술을 과학의 전통 개념의 하나로 잘못 적용한 오류이다.(327) 기술을 과학의 도구로 간주하거나 자연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이다.(327)

3. 과학이나 과학의 도구로 전락된 기술을 단지 "논쟁의 여지없는 기초" 즉 오로지 기능의 효율성으로만 간주한다면 실제로 기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던 비가시성(불투명성)은 사라진다. 다시 말해서 그 기술에 맺어진 수많은 관계와 변화, 배경 이야기나 배후 상황들 혹은 발명하게 된 우연이나 일탈 나아가 기술이 유지될 수 있는 자본과 권력구조 등등 그런 불연속과 공백의 비가시성이 사라질 것이다.

4. 이런 기술의 비가시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비행기가 하늘이 뜰 수 있는 과학이론인 베르누이 법칙이라는 양력이론은 살아남지만 실제의 비행기는 만들어지지도 못하고 뜰 수도 없게 된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디엔에이 분자생물학이론이 아무리 대단한 과학이론이라고 해도 실험실 현장에서 세포 배양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328) 과학이 과학이론으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듯이 기술양식은 더더욱 기술 발명의 한 사건으로만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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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지그재그, 부정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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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인이 마법의 탄환이라고 생각했던 기술의 목표와 유용성 이면에 부정적 비가시적인 것들 예를 들어 기술에 따르는 위험, 오염, 폐기물, 예상 밖 결과들과 같은 기술의 우회로에서 생긴 뒤틀린 비극들이 너무 많다. 이제 사전예방책precaution도 늦은 것 같다는 라투르의 표현(329)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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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존재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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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의 존재양식은 객체 자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객체란 기술 존재양식이 운동해간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330)

2. 기술의 존재양식과 관계 맺으려면 (1)더블클릭의 유혹을 피하며, (2)소위 객체 자체라고 그동안 알고 있었던 정적 상태를 통해 사물을 설명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운동성을 수용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기술의 존재양식을 접근할 수 있다.

3. 객체 자체를 기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근대인의 태도는 흔적이나 그림자를 보고 객체라고 간주한 대오류이다(330) 객체는 운동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흔적이나 그림자가 아니라 운동 안에 스며든 비가시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로봇 중에서도 혼자서 다 할 것 같은 소위 오토마톤(대문자 AUTOMATON)조차도 타자와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라투르는 ""오토마톤보다 더 "혼종적이고 타율적인" 것이 없다""There is nothing more “ heteromatic” than a robot, an automaton 라고 표현했다.(330, *222)

4. 라투르가 말하는 오토마톤의 유비는 기술 존재양식이 단선적이고 고립적인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운동성 안에 재워둔 변형의 힘으로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정적 사물은 운동의 수학적(미분적)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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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인간보다 앞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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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의 사회적 맥락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2. 객체 자체가 아닌 진짜 기술적 객체는 불투명하며 불연속적이며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비가시적인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비로소 기술적 객체가 드러난다. 여기서 비가시성이란 기술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 혹은 사회적 맥락이 아니라고 라투르는 단호히 말한다. (331, *222) 즉 인간이 기술을 만들지만 기술도 인간을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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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합리주의 목록에(aletheia, *223) 표시되지 않고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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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피스테메의 경로는 선형적이 아니다. 합리주의 목록에 없다는 말의 뜻은 비합리주의를 추종하자는 말이 아니라 단순하거나 선형적이지 않는 복잡하고 일탈이 포함된 불연속성과 공백의 미로를 합리적으로 따라가기 위한 방법론적 태도라는 데 있다. 이 점은 라투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223)

2. 에피스테메의 경로 자체가 우회적이고 일탈적이며 비선형적이며 변동성이 있기 때문에 합리성이라는 말을 잘 써야 된다. 근대인이 일방적으로 채택한 합리성 기준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고 라투르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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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명사형태가 아니다 - 기술은 객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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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은 객체라는 명사 형태가 아니라 '기술적'이라는 형용사이거나 '기술적으로'라는 부사 혹은 '기술화하다'라는 동사 형태로 보아야 한다고 라투르는 말한다.(332)

2. 즉 기술은 타자를 굴절시키는 변화의 힘으로서, 기술도 변신metamorphoses 존재양식처럼 타자를 탐구하는 존재양식이다.(333) 물론 기술 존재양식이 타자를 탐구하는 방식과 변신 존재양식이 타자를 탐구하는 방식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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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이라는 탐구방식을 갖는 기술, 기술은 번역이며, 번역은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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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만의 독특한 탐구방식으로서 '발명'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발명이라는 표현과 개념에 압도되지 않고 발명 과정에서 잠재된 도약, 단층, 단절과 파열의 경로가 더 중시되어야 한다고 라투르는 지적한다. 재생산 존재양식이 변신[MET]의 힘에 의존하는 것처럼 기술 존재양식도 변신에 힘입어 새로운 가능성들을 보여준다.

2. ‘발명’이라는 탐구방식을 갖는 기술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집짓는 기술에서조차 집짓는 데 들어가는 재료들, 인도네시아 산 목재, 독일산 창틀, 한국산 유리, 중국산 모래, 태국산 채석 등등 수많은 구성요소들이 집을 짓는데 변형과 변성이라는 변신의 존재양식으로 상호연결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연속적이고 단선적인 경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비스듬하고 비뚫어지지만 조화라는 이름으로 혹은 충돌이라는 묘책으로 변신의 경로들이 생성되면서 집은 지어진다.(333-4) 일단 지어진 집, 장인의 손에 잘 구어진 도자기는 상당히 오래간다.(지속적이다; 텍스트에서는 재생산 존재양식의 지속성으로 표현되고 있음)

3. 발명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신의 과정을 갖는다. 즉 기술 존재양식은 지속되지만 여전히 변신 과정을 남겨둔다. 그래서 지어놓은 집 벽이 부스러지기도 하고, 자동차는 고장나기도 하고, 컴퓨터는 악성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며, 실험실 배양균이 갑자기 죽기도 하고, 잘 짜놓은 해먹도 그 밧줄이 헤지기도 한다.

4. 기술은 자신을 기꺼이 빌려주어서 기술의 결과물을 지탱하면서 동시에 그 기술 결과물은 해체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번역은 반역"이라는 표현이 텍스트에만 잘 맞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기술 존재양식에 더 잘 작용된다. 집짓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기술 존재양식은 번역과 변신 과정을 거치는데, 그렇게 번역되고 변신된 것조차도 다시 해체될 수 있다는 뜻에서 라투르는 '반역'이라는 표현을 썼다.(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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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양식과 재생산 양식,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교차의 반역성이 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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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생산의 위험(risk)도 높은 편이지만, 기술의 리스크가 훨씬 더 강하다.(336) 예를 들어 자연사 박물관에서 만나는 화석의 깊이에 깊은 인상을 받지만 기술공예 박물관에서 만나는 공예품이나 기관차 모형도 그 자연사 이상의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기술 존재양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한한 변이를 품고 있다.(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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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더블클릭으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 더블클릭으로 본 기술 [TE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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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블클릭은 지시의 연쇄를 놓치듯이 기술의 번역과 변신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인은 기술을 그 효용성과 성취도라는 기준으로 보아왔다. 더블클릭은 기능과 목적 그리고 수단이라는 투명성과 효율성 그리고 통제가능성의 진리조건으로 기술을 간주하고 왜곡한다. 이런 더블클릭의 오류와 착각은 기술의 정신과 기원 그리고 기술의 아름다움과 진리를their spirit, their genesis, their beauty, their truth. 전부 놓치고 만다.(337-8, *227)

2. 여기서 라투르는 근대인의 더블클릭을 남성 3인칭 대명사 "he"로 표현하는데, 이는 반근대 혹은 탈근대를 추구하는 인류학자를 "she"로 표현한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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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클릭으로 상실되는 기술의 스피릿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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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을 더블클릭처럼 물질로 환원하는 순간, 변신의 이질성과 저항의 차이를 감지할 수 없게 된다.(혹은 그런 이질성과 차이가 상실된다)(339) 기술을 대하는 더블클릭이라는 근대인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은 기술의 접힘FOLDING(대문자)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기술의 객체 대신에 기술의 프로젝트PROJECT(대문자)로 상징된 대안을 제시하는 라투르의 표현이다. 기술의 프로젝트란 기술의 물질화에서 탈출하여 기술의 스피릿을 회복하자는 라투르의 주장이다.

2. 더블클릭으로 상실되는 기술의 스피릿이란 무엇인가? 기술의 더블클릭[DC]은 기술을 객체로 간주한다. 창조주가 있어서 창조물이 생기듯이 기술자(창조인, 호모파베르)가 있어서 기술이 생겼고, 그런 기술을 만드는 기술자의 발명정신을 중시한다. 그러나 그런 발명정신이 여기서 라투르가 말하려는 스피릿과는 전혀 다르다.

3. (FOLDING) 기술의 접힘FOLDING(대문자)에서 기술의 스피릿을 찾을 수 있다. 기술을 객체가 아닌 프로젝트PROJECT(대문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라투르는 제안한다. 단순한 이론적 제안이 아니라 당면한 실천적 과제이다.

4. 특정 기술을 발명한 기술자의 발명정신inventive spirit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기술이 기술자의 정신을 만들어가는 그런 거꾸로 된 존재양식이 라투르가 말하려는 스피릿의 핵심이다.

5. 접힘의 기술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더블클릭의 기술이란 (1)기술을 객체화로 한정시키며, (2) 물질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단정지으며, (3)기술통제와 투명성 및 합리성이 가능하다는 근대인의 믿음을 말한다. 반면 접힘의 기술이란 (1)접힘 위의 접힘, 함축과 복잡화 그리고 전개를 수반하며, (2)미로의 형태를 전개하는 중첩의 번역작업이다. 기술의 스피릿은 신비주의 영성이기보다는 접힘과 미로 불투명과 번역의 중첩성을 파악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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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한글본의 용어 번역 한 두 가지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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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글본 338쪽 아래 문단 중간이다: "기술은 항상 접힘 위에 접힘, 함축, 복잡화, 전개를 수반한다.“ 여기서 전개라는 번역의 영어본 단어는 explanation이지만 불어판 원본은explication으로서 [implication, complication, explication]이 같은 대비법으로 다뤄지는 개념의 한 측면이다. 그래서 "기술은 항상 접히고 접혀서 내재되고 중첩되며 외현되어 간다.“로 번역하면 더 좋다. (영어본 228; 불어판 원본 235)

2. "미분소"보다 "차이"로

(1) 미로를 거치면서 기술의 존재양식은 구부러지고 꺾어지며 부러지기도 하면서 번역의 중첩성이 일어난다. 그런 중첩의 번역과정을 직시하려면 우선 물질을 소유한다는 근대인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2) 그리고 전체의 행로를 다 파악은 못해도 부분부분들의 향방을 눈치채게 해주는 다양성의 흔적들을 식별하게 된다. 그런 다양성의 흔적이 바로 번역의 요소인 미분소differential들이다.

(3) 번역자는 이를 미분소라고 번역했는데, 그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하게 "차이"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차이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 때문에 기술 존재양식의 변신과 변환을 간접적으로 감지하게 해주는 표지판으로 될 수 있다.

(4) 번역자가 미분소로 번역한 이유는 아마 다음 소절에 등장하는 기울기gradients라는 용어 때문에 미적분의 미분소 개념으로 번역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여기 텍스트에서 사용된 컨텍스트에서 볼 때 미분소보다 단순히 "차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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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있으면 그보다 앞서 기술자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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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에 대한 고정관념의 하나로서 호모파베르 이후에 기술이 탄생된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으로만 보면 기술은 반드시 인간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2. 라투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래밭에 시계가 발견되면 시계공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으로 세계의 존재와 창조자를 증명하려는 오류처럼, 기술이 있으면 기술자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도 근대인의 오류라는 데 있다.(*228)

3. 인간은 호모파베르의 존재양식처럼 기술자가 기술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기술에 의해 변곡되기도 하는 그런 기술적 우회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태로서 인간 혹은 쌍방적 관계로서 호모파브리쿠스(Homo Fabricus; 수동태)이다.

4. 라투르는 이를 총을 쏠 때 반동이 일어나듯이 바로 그런 반동으로 생성된 것이 인간이라고 비유한다. 아주 이해하기 쉬운 비유법이다. 라투르의 비유대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기술적 우회의 반동이다". humanity is above all the recoil of the technological detour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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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연동SHIFTING(대문자); 변동, 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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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연동/변동 : 탈연동shift 개념은 자동차기어를 작동하여 변속하는 매커니즘에 따온 은유이다. 이런 점에서 탈연동이라는 번역보다 (기어) 변동이라는 번역어로 생각하면 좀 쉽게 다가갈 수 있다.

2. 변동의 4단계(instances; 심급)는 공간의 이동, 시간의 이동 행위자 양식의 이동displacements in time, in space, and in the type of actor을 말한다.

3. 라트르의 직관적 사례를 들어보자. 두통약으로 발명된 기술 아스피린을 먹고 나의 두통이 없어졌다고 하자. 나와 기술 사이에는 공간과 시간에서 볼 때 이미 상당한 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아스피린을 제조한 공장과 공장건물을 건축한 업자들이나 제약회사 영업자들, 등등 상당히 복잡하고 우회적인 행위자들이 개입되고 그런 행위자로부터 지속적인 변동(탈연동) 덕분에 나는 오늘 이 약 아스피린을 먹고 효과를 본 것이다.

4. 이런 기술적 우회in any technological detour를 통해서 우리는 기술 존재양식의 탈연동(시프트)를 보다 쉽게 인지할 수 있다.easily recognizable (*229)

5. 기술 존재양식은 항상 접힘의 양식으로 있기 때문에 시프트 없이 그것을 접근할 수 없다. 접힘은 선형적인 복합구조가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구분될 수도 없는 중첩의 존재양식이다. 그래서 기술자 혹은 기술자의 발명 스피릿이 기술을 변동시키기도 하며 동시에 기술이 기술자를 변동시키기도 한다. (능동적으로) 탈연동하면서 (수동적으로) 탈연동된다는 뜻이다. 이런 행위자의 양식이 4번째 심급 the fourth agency이다.

6. 네 번째 행위자 양식은 행위자가 주체로 되어 "무엇무엇을 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무엇을 하게 된다"라는 not to do something, but to have something done 기술적 우회의 피-탈연동을 말한다.(*229)

7. 더 쉽게 말해서 역량competence이 어떤 무엇을 수행performance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니까 역량이 보여진다는 뜻이다.(*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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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기술의 목적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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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을 물질과의 결합으로부터 해방시킨다.

2. 기술과 기술자라는 존재의 선후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자식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의 자식임을 명심해야 한다.(일방 관계가 아니라 양방 상호관계임을 강조한다.)

3. 기술을 투명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4. 기술을 목적지향과 수단으로서의 효용가치로만 간주하는 편견의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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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생태화ecolog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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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구적 물질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근대인의 물질을 왜소하고 빈약한 것으로 간주하는 근대화 전선modernization front을 해체해야 한다는 뜻이다.(343)

2. 기술적 개체의 환상에서 벗어나 기술의 스피릿을 호흡하도록 라투르는 근대인에게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라투르는 생각하는 듯하다.(*)

8장 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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