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과 조선양명학의 인간본성론-발표원고와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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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K-학술확산연구센터 콜로키움

2024년 8월 20일 / 성균관대학교

진화생물학의 인간본성론과 조선양명학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요약>



i.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인간본성론Biological Human nature은 적응진화의 선택 수준 논쟁과 연관된다. 생명개체 수준에서 적응진화의 압력이 작용되는지 아니면 개체군 집단 수준에서 작용되는지의 문제는 인간의 이기성과 협동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 발표내용은 이기성을 설명하는 개체수준론과 이타성을 설명하는 집단수준론이 서로에게 배타적이 아니라 상보적 관계의 다층성이라고 강조한다. 즉 인간본성은 이기적 행동양식과 협동적 행동양식의 양면성을 가지며, 이러한 양면성을 배타적이 아니라 상보적 양태로 드러낼 때 비로소 인간본성이 도덕적 지위로 승격된다.

ii. 이러한 상보적 인간본성론은 성즉리에서 심즉리로 전환하는 양명학의 인간본성론에 상응한다고 논증한다. 이 논증을 위해 양명학이 기존 주자학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본성론의 확장된 형태라고 간주한다.

iii. 양명학 중에서도 지행합일을 더 강조하는 조선 양명학에서 도덕적 인간본성론과 생물학적 인간본성론 사이의 합생 가능성이 더 크다는 논거로 확장한다.



1. 진화생물학 적응진화의 (자연)선택 수준 논쟁

1.1 진화생물학의 인간본성론

생명과학에서 말하는 인간본성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연구된다. 하나는 좁은 의미의 분석 과학적 연구방법론으로서, 유전자 분석을 통하여 인간의 형질과 행동을 파악할 수 있다는 환원적 인간본성론이다. 현 시점의 유전학적 형질을 근거로 하여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근연적proximate 인과관계, 혹은 줄여서 근연적 인간본성론이라고 표현한다.

한편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넓은 의미의 인간본성론이 있다. 진화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인간다워진 통시적 과정으로 형성된 진화적 인간본성론을 의미한다. 진화적 인간본성론은 장구한 진화 시간과 복잡하고 우회적인 생태적 인과관계 혹은 긍극적ultimate 인간본성론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궁극적”이란 수식어는 문제해결의 완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의 시간적 근연성에 대비하여 인과의 복잡성과 장구한 역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뿐이다. 이 발표에서 말하는 생물학적 인간본성론은 진화의 궁극적 인간본성론이다.

근연성 탐구방법론과 긍극성 참구방법론의 차이는 아래 표를 참고하면 된다.(최종덕 2023, 114)

근연성proximate 탐구방법론
(분석과학 일반)

● 시간독립적 일반화의 존재론
● 인식론적으로 경험과학
● 단일한 인과관계를 찾는 과학
● 가설연역적 법칙과학
● 기계론적/결정론적 방정식 의존
● 탐구객체와 탐구주체의 분리



궁극성ultimate 탐구방법론
(진화생물학)

● 시간의존적 생명의 존재론
● 인식론적으로 경험과학
● 우연성과 복잡성의 인과관계 과학
● 시간과학의 성격
● 기계론이 아니고 생기론도 아닌 인과론적 과학
● 주객 네트워크(공통조상 이론)



진화생물학의 궁극적 인간본성론은 인간의 본성을 형이상학이나 초월적 규범주의로 설명하지 않으며, 장구한 생명의 진화사를 통해 생성된 것으로 이해한다.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인간 본성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본성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인간성과 자연성을 하나의 뿌리로 본다. 나아가 인간 본성과 자연 본성은 동등하고, 더 나아가 개별 인간 사이의 환경적 차이를 강조하지만 존재론적 차별을 부정한다.

진화생물학을 거론하려면 “진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논의해야 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90-1882) 진화의 핵심 개념은 “공통조상론”common ancestor과 “자연선택론”natural selection으로 요약된다.

진화론 핵심개념1 (공통조상 이론) : 생명의 기원은 공통의 동일 조상에 있다. 즉 동일 조상으로부터 가지치기하듯 갈라져 모든 생물종이 형성되었다.

진화론 핵심개념2 (자연선택 이론) : 자연선택의 진화란 환경에 의해 주어진 변이 가운데 적합도의 차이에 따라 적응된 형질들의 유전과 보전을 말한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1859)에서 말하는 진화 개념을 정리해준 마이어(Ernst Walter Mayr, 1904-2005)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마이어는 다윈 진화론을 아래처럼 풀이해 주었다.

첫째 모든 생물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데, 그 변화가 진화 그 자체이다.

둘째 모든 생물은 하나의 공통조상을 갖는다.

셋째 종의 증가는 종 다양성의 증가이며, 지리적 격리 혹은 돌연변이를 통해 새로운 생명종이 생성된다.

넷째 지리적 격변 요소 외에 진화적 변화는 점진적이며, 급작스런 변이로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섯째 유전적 변이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중에서 적응도 높은 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자연선택론이 중심이다.

여섯째 진화의 방향은 진보와 다르다. 진보의 방향은 목적적이지만 진화의 방향은 무목적이기 때문이다.(마이어 2002, 9장; 최종덕 2023, 125에서 재인용)

인간 본성과 자연 본성의 동등성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은 초험적 본질주의혹은 선험적 형이상학에서 말하듯 불변성, 영원성, 독립성, 객체성, 절대성이라는 존재론적 절대지위가 아니라 변화하고 상호적이며 주객 비분리와 항상 운동하는(역동성) 성질을 지닌다.

진화생물학의 인간본성론을 탐구하기 위하여 오늘의 인간이 인간다워지기까지 누적된 변화와 환경과의 상호성 그리고 역동성의 진화론적 경로를 추적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연선택이라는 적응진화 시스템 안에서 적응진화의 압력이 생명 개체에 적용되는지 아니면 개체군 집단에 적용되는지의 문제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지 아니면 협동적인지를 가늠하는 생물학적 지표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주제발표의 핵심이다.

1.2 적응진화의 선택수준 논쟁

선택수준이란 자연선택의 기제가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개체 차원에서만 가능한지에 대한 진화생물학 핵심 쟁점의 하나이다. level / unit of selection 선택 수준은 이기주의-이타주의 논쟁의 배경이다. 선택 수준이란 어떤 개별형질 혹은 모듈형질에 진화적 변화를 주는 선택 동력이 유전자에 있는지, 개체에 있는지, 집단에 있는지를 따지는 문제이다. 즉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이 작용하는 수준이 분자 단위인지, 유전자 단위인지, 세포 단위인지, 유기체 개체 단위인지 나아가 집단이나 개체군 단위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생물종은 선택 수준의 단위로 될 수 없다. 개체선택은 자연선택의 힘이 개체에 작용한다는 것이며, 집단선택은 집단에 작용한다는 뜻이다.

집단선택론은 대체로 생물개체의 이타성 행위와 협동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배경이며, 개체선택론은 집단수준을 부정하며 개체 수준에서도 충분히 협동성 행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적 배경이다. 1966년 이후 집단선택론은 완전히 퇴출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 부분적으로 개체수준과 집단수준이 다층적으로 작용된다는 다층수준 이론이 부각되고 있다.

이 강의에서는 이런 개체수준과 집단수준의 선택이론을 먼저 설명함으로써 인간본성이 이기적이냐 아니면 이타적이냐 라는 배중율적 관점이 아니라 이기성의 본성과 이타성의 본성이 공존하는 공재적이고 상보적complementary인 인간본성론을 해명한다.

찰스 다윈에서 개체선택 수준과 집단선택 수준의 양면성이 다 나타난다. 『종의 기원』(1859)에서는 개체선택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의 유래』(1871)에서는 집단선택의 수준을 부여주고 있다. 이는 다윈 자신의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종의 기원』에서 말하는 생물학적 기준과 『인간의 유래』에서 말하는 도덕사회적 기준 사이의 차이일 뿐이며, 그 차이는 모순이 아니라 병립가능하다. 개인 차원에서 관계와 부족 차원의 관계는 상보적이라는 뜻이다. 다윈은 그 차이와 그런 차이의 병립과 공재 가능성을 후기 작품에서 실증적으로 증명해 낼 수 없었다.

찰스 다윈은 본성론이라는 말 대신에 개인 행동양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찰스 다윈『인간의 유래』(1871)에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설명하는 다음의 문구를 인용한다. “고급의 도덕 기준이 동일한 부족집단 내 다른 개인에게 약간의 이익이거나 아니면 이익이 전혀 없어도 계몽된 개인들이 늘어나서 결국 도덕 기준이 전체적으로 향상된다면, 분명히 그 부족 집단은 그렇지 못한 다른 부족 집단보다 크게 번성할 것이다.

애국심, 충성심, 용기, 동정심 등의 고급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부족 집단은 언제나 타인을 도와줄 수 있으며 집단의 공동선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렇지 못한 다른 집단보다 우위에 있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급 문화의 부족 집단은 다른 집단을 대신 할 것이며, 그때 도덕은 그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교육을 받아 도덕 기준을 갖춘 개인들이 많아지면 결국 어느 집단이나 흥기하고 증대될 것이다.”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166쪽)

『인간의 유래』에서 다윈은 남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자기희생적 이타주의 행동 사례에 주목했다. 다윈은 두 가지 추론을 끌어냈다. 첫째, 부족 집단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알면서도 집단의 이익과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집단 안에서 그런 이타주의 행동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바로 그런 집단이 그렇지 못한 다른 부족보다 풍요롭다는 점이다. 둘째, 이러한 이타적 행동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다윈의 󰡔인간의 유래󰡕에 담긴 또 다른 의미이다.(최종덕 2023, 186)

다시 강조하지만 1859년 『종의 기원』에서 말하는 개체선택론과 1871년『인간의 유래』에서 말하는 집단선택론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종의기원』에서 말하는 생물학적 기준과 『인간의 유래』에서 말하는 도덕사회적 기준 사이의 차이일 뿐이며, 그 차이는 모순이 아니라 상보적이다.

1.3 다층수준론

개체수준 선택론과 집단수준 선택론의 다층이론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협동적 본성의 결합을 설명할 수 있다. 개체수준과 집단수준을 결합시켜 보려는 생물철학자 소버(Elliot Sober)는 이를 다층수준 선택론multilevel selection theory으로 이름 붙였다. 소버는 다양한 수준에서 다층적으로 작동되는 다수준 선택이 적응진화의 광범위한 설명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DS Wilson et al. 2008).

예를 들어보자. 벌은 둥지에 침입한 외부 침입자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꼬리침으로 상대를 쏘는데, 그 침과 함께 자신의 창자도 빠져나 와 죽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다. 또 새들이 땅에 앉아 먹이를 구하고 있는 동안 무리의 경계에서 보초를 서는 새가 있다. 이 새는 포식자에게 가장 손쉽게 노출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집단을 위해 보초를 선다.

수컷 사향소들은 포식자에 맞서 마차잇기 형태의 둥근 방어막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암컷과 새끼들을 보호한다. 고전적 집단선택론을 붕괴시킨 윌리엄스의 『적응과 자연선택』의 핵심은 이런 사례들이 마치 집단선택을 옹호하는 증거로 오용된다는 것을 지적한 데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윌리엄스의 지적조차 집단선택의 적용범위를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소버는 말한다. 소버는 이런 점을 들어 개체 수준의 선택이 기본적인 선택압이지만, 일부에서는 집단 수준의 선택도 부분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소버의 주장은 다층 차원에서의 자연선택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며, 나아가 개체선택과 집단선택이 형질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종합적 선택이론으로 볼 수 있다(Sober and Wilson 1998).

다층수준 이론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지 아니면 이타적(협동적)인지를 배중율적으로 보려는 관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즉 인간 본성은 이기적 행동유형과 협동적 행동유형이라는 이중 트랙으로 진화되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진화생물학의 인간본성론은 양명학 특히 조선양명학의 인간본성론과 유비될 수 있다. 이기성과 이타성(협동성)의 상보적 공재를 보여주려는 진화생물학과 양명학 사이의 유비는 단순한 비유법이 아니라 인간본성을 이해하고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도덕론을 벗어나서 행위와 인식의 일치, 자연과 문화의 일치를 지향하는 구체적 일상의 도덕론을 위한 논리적 과정이다.

자연의 마음이론이라는 점에서 생물학적 본성론과 소통가능한 철학적 논의들이 양명학에서 드러난다. 특히 조선양명학에서 현실 속의 실천을 강조하는 시대적 변화에 조응한 타자성의 본성론은 새로운 각도로 인간을 이해하는 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먼저 양명학 일반을 대략적으로 서술하기로 한다.

2. 성즉리에서 심즉리로 전환하는 양명학의 인간본성론

2.1 양명학 원형으로서 맹자

선(善)한 마음의 씨앗이 선천적으로 혹은 생득적으로 갖추고 태어나며 태어난 후에 나는 내 속의 선한 씨앗을 잘 키워내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맹자가 말한 착한 마음의 씨앗이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사단四端을 말한다. 그 사단이 맹자가 말하는 양심(良心)이다. 맹자의 양심이 양명학 인간본성론의 토대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본성은 리이다.(性卽理也) 마음에 있는 것은 본성이라 부르고(在心喚做性), 모든 사물에 있는 것은 리라고 부른다(在事喚做理)”(『주자어류』상 제5권) 주자학도 맹자를 받아들이지만 해석하는 방식과 방향이 다르다. 주자에서 인간의 인의예지신은 선천적으로 갖춰진 리理이다. 리가 기로 드러나는데, 본체의 리가 현상의 기로 나타난 것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감정(情)이라고 한다. 맹자에서 사단은 양심으로 직접 드러나는 것이지만, 주자학에서는 리의 원형이 먼저 존재하고 그런 리가 발현된 것으로 보는 간접 표현방식으로 사단을 본다는 점이다. 이것이 주자 성즉리의 요체다.

2.2 양명학의 키워드: 양지, 지행합일, 치양지

양명학에서는 이와 다르게 성즉리 대신에 심즉리를 취한다. 왕수인(王守仁, 陽明, 1472~1528)은 주자학의 본성론인 ‘성즉리(性卽理, 본성은 즉 리이다)’ 대신에 ‘심즉리(마음이 곧 리이다)’의 마음이론을 내세웠다. 양명이 제자들과 대화한 문답집 『전습록』에서 기존 주자학에서 의미격하 되었던 감정의 상태를 자연적 ‘본성’으로 재발굴함으로써 이기론에 종속되지 않은 인간본성론을 보여준다.

양명학의 철학은 전습록을 통해서 전통 유학의 흐름을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당대 주자학에서 볼 수 없었던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양명은 왕수인의 나이 37세에 나온 ‘심즉리’의 철학과 38세에 나와 세상을 흔든 ‘지행합일’의 철학 그리고 50세 나이로 천지만물 일체설로 잘 알려진 ‘치양지’致良知의 철학을 포함한다.

양명학은 왕양명 당시만이 아니라 후대에서도 이단으로 몰려왔다. 양명학의 천하만물 평등사상 자체가 중앙집중형 권력체계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명학이 생겨난 중국은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양명학은 배척되었다. 왕수인 당시에도 그런 모양이었나 보다.

왕수인이 죽은 후 시기심이 많은 예부상서 계악이 왕수인의 학문이 거짓된 것이라고 조서를 내려 금하려 했다. 이에 첨사 황관이 상소를 올려 왕수인의 억울함을 대신 호소했다. 그 호소문 안에 양명학의 키워드가 그대로 들어 있을 알 수 있다. 황관의 호소문에 양명의 학문이 위대한 이유 3가지를 말하는 부분이 있다. 아래와 같다.(박은식(이종란) 2003, 340)

첫째 양지를 발휘하고 확충하는 치양지입니다. 앎에 이르는 치지는 공자에서 나온 말이고 양지는 맹자에서 나온 말인데 어찌 이단이겠습니까?

둘째 친민이니, 백성과 친하라는 말은 맹자의 여민동락이고 혈구지도가 친민의 원리인데, 혈구지도는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논어의 恕와 같습니다.

셋째 지행합일은 주역의 "이를 곳을 알아 이르고 끝날 곳을 알아 끝내는 것"입니다. 왕수인은 이런 점을 찾아내어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헛된 말을 일삼지 못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왕수인의 학문이 바로 공맹의 학을 잇고 있으니 어찌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이 안에 양명학의 키워드가 다 들어 있으니, 그것은 양지요, 지행합일이며 치양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심즉리설(양지설), 치양지설, 지행합일설이라는 양명학의 본체를 대신 말하고 있는 셈이다.

2,4 자연적이란 무엇인가

양명학에서 천지만물은 생생하고 쉼이 없으며不息 그 가운데 새로움을 창출하는 자기조직성이다. 서양의 네이처를 번역한 자연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천지만물’일 터인데, 양명학에서 말하는 천지만물은 그런 물질적 자연으로 그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과 천지의 마음이 더불어 새겨져 있는 자연이다. 그런 천지만물은 들숨과 날숨 그리고 흡입하고 배출하는 신진대사 작용을 하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자기 생명의 원인을 자기 안에 스스로 그리고 저절로 품고 있다.

사람의 본마음(본성)을 가르는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양명의 시비지심은 맹자의 시비지심을 더 확충시켜서 올바른 판단과 그런 판단을 통한 실천을 포함한다. 행동으로의 실천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통각을 거치면서 실현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자기조직성이며 저자는 이를 ’유기적 생명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천지만물의 일체를 이해하려면(깨달으려면) 사람의 본마음이 천지의 마음에 합치됨을 파악해야 한다. 합치라는 표현은 아주 추상적이지만 양명학은 합치가 가능하기 위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망막에 백태가 끼게 되면 세상이 흐리게 보이듯이, 개인의 사욕이 마음에 끼게 된다면 양지는 드러날 수 없고 마음에 장애물만 가득해진다. 그렇다면 마음의 본성이 아무리 청정(영명靈明)하더라도 사욕에 갇힌 해악만이 횡행해진다. 사욕을 걷어내기 위한 구체적 행동양식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앞에서 천지만물의 본마음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기존의 성즉리에서 심즉리로의 변화를 대신 말해 준 것이다. 심즉리란 마음이 곧 본성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본성은 감정의 마음을 포괄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개별자의 본성으로 국한되지 않고 하늘의 마음으로 접속되었다는 점이 중시된다.

인간의 본마음은 만물의 마음과 ‘감응’한다는 것인데, 거꾸로 말해서 누구나 감응만 이뤄내면 성인으로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성인이란 그 마음이 순수한 천리로서 인욕人慾의 섞임이 없는 사람이다.”(김세정 2020, 265에서 재인용)

성인의 마음은 천지만물과 한 몸으로 삼으니 안과 밖, 멀고 가까움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성인은 차별적인 존재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고 선천적으로 부여된 존재도 아니라 누구에게나 감응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열린 존재라는 점이다. 바로 그런 열린 지혜가 심즉리의 양지良知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김세정 2020, 266)

양지는 누구에게나 갖춰진 생득적 마음이다. 양지의 마음을 실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이 된다는 점에서 양명학을 평등론의 철학으로 소개한다.(김세정 2020, 302) 양지양능良知良能에서 양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며 양능이란 배우지 않더라도 능한 것을 말한다.(김세정 2020, 309) 양지는 영명靈明하여 천지만물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연결하여(응대하여) 자각할 수 있다고 한다.(김세정 2020, 311)

양지의 영명성이 있어서 개인의 정신 혹은 개인의식 수준에 머물지 않고 우주적 차원의 생명력에 도달할 수 있다.(김세정 2020, 312) 개인의 생명과 우주의 생명이 만나게 되는 이유는 양명의 앎이 제도나 규범이 아니고 억지나 당위도 아니라 순응성에 있다는 데 있는데 여기서 순응이란 쉽게 말해서 자연의 순리를 안다는 것이다.

양지를 실천하는 문제가 가장 큰 과제다. 양지를 실천하는 수준에 따라서 도덕적 행동양식의 층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개인 욕심이라는 백태가 마음을 가려서 실천과 행동이 멀어지니 우리는 그런 층차를 욕심이라고 말한다. 욕심의 장애는 사람마다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생득적이라기보다 환경적 요소 때문에 생겼다고 본다.

그 층차를 굳이 나눠보자면 (1)원래부터 욕심의 장애가 끼지 않은 사람들生知安行者, (2) 힘써 배워서 장애를 벗겨내고 자기 안에 숨겨져 있었던 양지를 되찾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학습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다.學知利行者 (3) 한편 장애가 너무 끼어서 사욕의 습관이 골짜기로 패어 양지를 찾는 실천행동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困知勉行者들의 층차다.(김세정 2020, 305-6)

이런 3번째 층차의 사람들조차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그 판단에 따라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주체성이 정말 중요하다.(김세정 2020, 307) 개인 사욕의 후천성을 잘 보기 위해 전습록에 나온 사욕에 대한 2 가지 문헌을 살펴본다.

첫째 사욕은 후천적이고 양지는 선천적이라는 점이다. “사람들 중에 누가 뿌리가 없겠는가? 양지가 바로 하늘이 심어준 영명한 뿌리이니 저절로 쉬지 않고 생성한다. 다만 사욕이 누가 되어 이 뿌리를 해치고 막아서 자랄 수 없을 뿐이다.” (전습록 황수역 244조목)

둘째 후천적 습관으로서 집착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점이다. “칠정이 그 자연스러운 유행에 따르는 것은 모두 양지의 작용이며 (칠정 그 자체를) 선과 악으로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집착의 장애가 끼면) 안 된다. 칠정에 집착이 있으면(끼면) 모두 慾이라고 하여 그 집착이 양지를 가리게 된다.”(전습록 황성증록 209조목; 김세정 2020, 340)

전습록의 한 어구에서 보듯, “만물일체의 양지가 선천적으로 구비되어 있지만 사사로운 욕망의 장애물들은 양지를 가려(차폐시켜) 경쟁과 배제, 편벽과 고루함, 교활과 음험의 해악을 낳는다”(양명, 대학문; 답섭문울 180조목)는 표현은 양지가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런 해악이 해소되지 않고, 치양지致良知의 주체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을 보여준다.(김세정 2020, 346)

양지는 홀로 드러나지 않고 감정이라는 인간 요소의 작용으로 드러난다. 이런 감정요소로 말마암아 집착이 내 마음에 끼게 된다.(김세정 2020, 341) 감정의 측면인 칠정, 즉 기뻐하고 화내고 안타까워하고 무서워하며 정에 빠지거나 미워하고 욕심내는 칠정은 그렇게 되면서 행동중독처럼 집착 행동의 습관양식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집착행동이 선천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후천적으로 강한 중독성을 가지기 때문에 집착은 정말 무서운 장애물이다. “무서워서” 피하고 그냥 그럭저럭 지내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무서움에서 과감히 벗어나도록 스스로 결정하라는 것이 양명의 지혜다.

양지가 공생의 치양지라는 실천의 길로 접어드는지 아니면 집착의 사욕으로 빠지게 되는지는 아주 중요한 마음의 기로이다. 이 두 마음의 양식이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라는 이분법적 기로와 다르게 이것과 저것이 내 마음 안에 같이 공재하고 있는데, 다만 행동의 실천여부 즉 지행합일의 여부로 마음의 양식이 겉으로 드러나게 될 뿐이다. 양명학의 심즉리를 다음 표처럼 구조화했다.

yangMing Mind

양명학에서 말하는 물物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 의지에 의해 진행되는 실천행위를 말한다. 우리 일상언어에서 사물事物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그 사물의 事가 곧 物의 진짜 의미다. 물이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연관적 관계를 말하기 때문이다. 물이란 타자를 대하는 관계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물은 事다. 사란 부정한 것을 바로 잡아 선을 행동하게 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곧 格이라고 한다. 양명학의 물은 주자 格物致知의 格物처럼 외향적 격물에 이르는 (이를 至) 대상이 아니라 정(바를 正)하게 실천하는 행위 유발의 관계를 말한다. 주자에서 말하는 격물치지의 격물과 다르게 정심正心으로서 격물의 관계론이 양지에 이르는 길이다.(김세정 2020, 294)

3. 조선 양명학으로 본 인간본성론과 생물학적 본성론

3.1 조선양명학의 줄기

조선양명학의 뿌리는 하곡 정제두 (霞谷 鄭齊斗 1649-1736)에 있다. 정제두의 양명학을 간단히 보면 (1) 이기일원, 양지 본체가 마음 작용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난다는 실천 중심의 이기일원론의 본체론과 (2) 내 마음 속에서 선한 본성이 있어 그런 모습의 양지를 깨닫는 주체지향의 본성론으로 볼 수 있다.

조선양명학의 토대인 강화학파 이건창과 이건승 형제의 양명학은 조선독립이라는 실천운동과 연결된다. 이런 실천사상은 하곡 정제두의 7대손 정원하와 독립운동의 실천가였던 이석영, 이회영, 이시영, 이상설 등의 양심을 배출했다. 강화학파 이건방의 제자 정인보의 『양명학연론』(1935년 동아일보 ‘오천년간 조선의 얼’ 연재 내용)과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의 󰡔왕양명선생실기』는 조선양명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3.2 박은식의 조선양명학

박은식의 『왕양명실기』(한길사 2010)를 중심으로 조선양명학의 특징을 검토한다. 『왕양명실기』는 동양학총서 제4집으로 박은식 전서 중권(1975년 영인발행)으로 발간된 책이다. 1888년부터 1894년 갑오개혁 이전까지 6년간 능참봉이 관직의 전부였던 박은식(1859-1925)은 성리학 공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에게 공부는 현실의 실천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의 표현이었고, 그런 소명의식은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면서부터 더 확고해졌다.

1907년 4월 양기탁 · 안창호(安昌浩) · 전덕기(全德基) · 이동녕(李東寧) · 이동휘(李東輝) · 이회영(李會榮) · 이갑(李甲) · 유동열(柳東說) 등을 비롯한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국권 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서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박은식은 신민회에 가입하여 교육과 대중매체에 관심을 기울였다. 연이어 박은식은 대동교를 창립했는데, 거꾸로 친일파 신기선(申箕善) 주도로 세워진 대동학회(大東學會)는 유림계의 친일화를 노골화했다. 이런 정치세력에 맞서서 장지연 · 이범규(李範圭) · 원영의(元泳儀) · 조완구(趙琬九) 등과 함께 대동교를 창립한 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은식 편)

이후 만주로 옮긴 박은식은 만주에서 나중에 대종교 3대 주교로 된 윤세복과 만난다.(1911년) 윤세복 집에서 머물면서 그가 바라는 양명학의 쌍이 대종교가 원하는 세상과 연결됨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동고대사론 등 많은 역사 저술을 했다. 고대사로서 만주 땅과 연관된 고대사였다. 이런 과정에서 박은식은 기존의 성리학에 보태어 조선양명학의 실천철학 특징을 보여주었다. 박은식은 대동교의 대동사상(大同思想)과 양명학(陽明學)을 연대하여 기존 유교를 개혁하여 국권회복의 운동철학에 진력했다는 점이 바로 조선양명학의 고유성이라는 뜻이다.

자강의 원칙과 유교를 구신해야 한다는 박은식의 儒敎求新論이 조선양명학 고유성의 내용이다. 그런 운동과 행동 차원에서 『왕양명실기(王陽明實記)』가 쓰여졌다. 이러한 운동철학에는 ‘국혼’과 ‘국백(國魄)’을 나누어 일제에게 빼앗긴 것은 ‘국백’뿐이니 ‘국혼’을 잘 유지하고, 이제는 기존의 제왕론이 아니라 새로운 민본론으로 우리 정신을 강화하여 완전 독립을 쟁취하는 원칙이 담겨져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은식 편) 당연히 일제는 박은식이 관여했던 『황성신문(皇城新聞)』, 『서북학회월보(西北學會月報)』 등 관련 매체를 폐쇄했고, 박은식의 저술까지도 ‘금서(禁書)’로 막았다.(이종란 2003)

박은식의 행동정신에는 (1)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 두루 펼치는 일에 행동하기 (2)오래되면 썩어지니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구신求新론이다. 박은식은 이러한 정신을 왕양명의 철학에서 공부했는데 그 공부의 행로는 조선양명학의 고유성으로 이어졌다. 박은식은 이를 위하여 도교나 불교가 양명학과 어떤 관계인지를 주목했다.

3.3 도교/불교에 대한 비판과 수용, 그리고 지행합일

왕수인(1472-1528)은 명나라 중기 송명 이학인 주자학에 덧붙여 심학을 창시한 철학자이다. 양명을 따서 붙인 이름 왕양명은 초년에 도교와 불교에 빠진 정도가 아주 심했다고 박은식은 쓴다.(박은식 2010, 61)

그러나 거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주자학과의 종합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통로를 마련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왕수인은 불교와 도교의 허황함을 비판했다. 그 비판의 핵심은 불교나 도교가 도덕의 문제를 거창한 우주론의 문제로 바꿔 말한다는 데 있었다. 불교나 도교는 '무'나 '허'의 개념을 자칫 우주의 최고 존재라는 형이상학으로 오해되게끔 한다고 왕양명은 비판했다는 점을 박은식은 강조한다.

박은식은 양명학을 마음론으로만 보려는 기존의 치양지 공부법과 다르게 지행합일의 공부법을 더 강조했다는 점이다. 양명학이 도가나 불교와 접근성이 높지만, 박은식의 조선양명학은 불교와 도가의 허무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행동과 운동의 철학을 부각시켰다.(이종란 66) 박은식이 말하는 인간의 본마음은 타자에 감통하여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교화할 수 있는) 실제적 힘이라는 뜻이다. 지행합일이란 움직임의 힘이며 구체적으로는 당시 민중의 상호부조론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조선양명학의 특징으로 승화된다.

세상에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완전히 무지한 사람은 없다는 지행합일에 대한 박은식의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박은식 2010, 95) 예를 들어 우리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서 비로소 음식(맛)을 알게 되고, 길을 떠나면서 길이 험하거나 편한지를 안다. 앎과 행동에 관한 공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박은식 2010, 276) 행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앎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지행합일이 있어야 비로소 양지의 본체가 더욱 밝아진다고 했다.(박은식 2010, 279)

친구 사이에도 겸손을 말하고, 부모의 효심에도 규범과 법칙 대신에 지행합일의 공부가 중요함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박은식은 양명을 공부하면 친구 간에도 서로에게 겸손함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고 한다. "친구를 사귈 때 "나를 낮추면 보탬이 되고 나를 높이면 손해 본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겸손이니, 겸손은 순전히 길한 것이므로 천지와 귀신이라도 복을 주거늘 하물며 동류인 사람이랴?“라고 썼다.(박은식 2010, 275) 겸손은 평등함의 또 다른 행동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평등하다는 생각과 그렇게 행동한다면 바로 그런 행동이야말로 천지만물의 양지를 얻는 지표인 셈이다. 천지만물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인의 마음은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삼으시니 천하 사람을 보는 것이 안과 밖, 가깝고 먼 차별이 없고, 혈기, 즉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형제와 자식처럼 본다”는 뜻이다.(박은식 2010, 280; 전습록, 권중 예기, 예운편)

주자학에서 말하는 오륜은 하늘이 내려준 규범이기 이전에 원래 있던 천성의 발현일 뿐이라고 했다. 효도하고 공손하며 친구를 믿는 것은 원래 천지만물과 하나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이 몸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마음은 본성의 한 부분으로 본래 갖고 있는 것이어서, 외부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니, 누구나 이런 마음을 실행할 수 있다고 한다.(박은식 2010, 317) 알기는 해도 누구나 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도록 게을리 하지 않고 자기를 관찰하는 것이 바로 양명학의 공부법이다.

지행합일은 경험지식과 대비되는 관념지식으로 구분하는 것에 벗어나 경험지식과 관념지식의 합체를 말한다. 그런 지행합일의 앎이 양지라는 것이다.(박은식 2010, 279) 그런 양지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공부이다.

3.4 조선양명학의 고유성

박은식은 공부 방법론을 말하면서 당시 조선사회에 양명학이 필요한 이유를 들었다. "학문을 닦은 공부는 간단하고 쉬우며 참되고 절실하니簡易眞切, 참되고 절실할수록 간단하고 쉬우며, 간단하고 쉬울수록 참되고 절실하다."(박은식 2010, 326) "양지의 이치는 간단하고 명백하거늘 수백 년 동안 한결같이 묻혀 있었다."(박은식 2010, 239) 양지를 얻는 길로서 공부는 간단하고 절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지는 지행합일 조건을 채워야 한다. 공부는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를 간단히 말하면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이론보다 구체적인 공부법이 필요했었다는 점이고, 그런 점에서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간단하고 절실한 행동지침의 의미가 요청되었다. 이런 시대적 요청을 수용한 것이 조선양명학의 고유성이다.

둘째 본마음의 형이상학적 해석보다 지행합일이라는 앎과 행동의 일체성을 특히 강조한 것이 강화학파에서 박은식에 이르는 조선양명학의 주요한 특징이다. 박은식의 행동정신에는 (1)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 두루 펼치는 일에 행동하기 (2)오래되면 썩어지니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구신求新론이다.


박은식의 유교구신론에서 실제로 박은식 민중(인민)의 삶을 개선하는 생활변혁론을 강조했다. (i)군주중심에서 인민중심으로 (ii)소극적 폐쇄성에서 적극적 전파활동을 (iii)산만한 주자학에서 간단하고 절실한 양명학으로 전환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박은식은 유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유교 자체 내부에 이미 개혁의 앎을 내재하고 있어서 그런 내재된 것을 찾아 끄집어내면 된다고 말한다.(금장태 2006, 214)

셋째 박은식은 조선양명학을 전파했던 40대를 지나 50-60대에 이르러서 참여적 독립운동가로 활동한다. 만주에서 독립운동 일선에 나선 대종교와 긴밀한 연락과 운동정신을 나누었다. 대종교 3대 교주인 윤세복 집에서 머물면서 단군정신이 어떻게 일제침략을 저항하는 행동철학으로 실천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박은식은 51세 나이로 일제에 맞선 대동교를 창립했다. 박은식의 대동교 운동은 양명학과 중국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 대동사상을 조선사회에 적용한 것이다. 66세 때에는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고 나중에는 임시정부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넷째 박은식은 이런 행위의 지행합일 철학은 양지의 철학과 맞물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은식이 새롭게 정리한 양지는 (i)자연의 밝은 앎이고 (ii)한결같고 거짓됨 없는 앎이며, (iii)두루 행하여 중단됨 없는 앎이고 (iv)널리 퍼져 막힘없는 앎이며 (v)성인이나 우민이나 다를 바 없는 앎이고 (vi)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합치되는 앎이다. 이러한 양지는 행동과 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이라고 박은식은 강조한다.(금장태 2006, 205)

다섯째 인식과 행동은 상보적이면서 나아가 기존 주자학과 양명학은 배척이 아니라 서로 상보관계라고 말하는 점은 박은식 조선양명학의 주요한 특징이로 여겨진다. 주자와 양명학의 같고 다름을 말한다 하더라도, 주자는 여러 사람의 이치를 궁구하여 얻는 것을 앎의 지극함으로 여기고, 왕양명은 본심의 양지를 이루어 얻는 것을 앎의 지극함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주자의 앎을 이루는 것은 후천적인 앎이요, 왕양명의 앎을 이루는 것은 선천적인 앎이니, 선천과 후천이 원래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가 언제 본심의 앎을 버렸으며 왕양명이 언제 물리에 대한 앎을 버렸는가? 다만 그 입각한 곳에 멀고 곧바른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박은식은 결론 내린다.(박은식 2010, 347)

4. 진화생물학과 조선양명학의 상보성

양명학에서 대동사회의 정신을 볼 수 잇는데, 배려와 공감의 마음을 회복하면서 대동사회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장애물을 걷어내고 양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치양지의 길과 지행합일의 길을 찾는 일은 세기말 위기의 조선사회의 절대절명의 필요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낳은 조선양명학의 공감과 협동의 본마음 이론은 다양성, 온전성, 평등성, 그리고 유기적 상보성의 인간본성론의 핵심이다.(김세정 2020, 399)

다양성은 각각의 일자리에서 타자를 배려하는 일이다. 온전성은 문명사회에 중독되어 피폐된 경쟁하는 마음을 고쳐서 덕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서구와 일제 침략에 맞서 피폐와 악습을 개선하기 위해 평등과 공감을 회복하려했던 조선양명학 정신은 백 년 전 한국사회 만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데 큰 의미를 갖는 평등과 자유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진화사적 인간학의 시선에서 그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던 선이냐 악이냐라는 이분법적 본성론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본성과 양육, 유전과 환경, 마음과 신체, 이기성과 이타성이라는 생물학의 관계들, 나아가 과학과 역사, 연속과 단속, 부분과 전체, 상관성과 인과성, 방법과 내용, 진보와 진화라는 철학의 관계들이 이분법으로 구획된 것이 아니라 상보성 관계임을 강조해왔다. 그 강조점은 진화생물학의 자연주의 인간본성론과 조선 양명학의 철학적 본마음 이론이 서로 응대되어 설명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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