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투르 경제철학3: 도덕경제와 생태화- 16장과 결론 해제
(한글판) 브뤼노 라투르 2023, 『존재양식의 탐구, 근대인의 인류학』 (황장진 번역) 사월의책. 742pp

(영어판) Bruno Latour 2013, An Inquiry into Modes of Existence: An Anthropology of the Moderns, Catherine Porter (tr.), Harvard University Press, 2013, 486pp

(불어판) Bruno Latour 2012, Enquête sur les modes d'existence: Une anthropologie des Modernes. La Découverte


라투르의 존재양식 3부 16장 그리고 마지막 결론
- 해제와 주석 -

최종덕 (독립학자, philonatu.com)





①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의 책, 『존재양식의 탐구』 영어판이 출간되고 10년 만에 한글판(2023)이 나왔다. 영어판을 힘들게 읽다가 한글판이 나오니 독서가 아주 수월해졌다. 어려운 라투르 독서를 위해 출간된 해설서가 다수 있을 정도다.(Gerard de Vries, Bruno Latour. polity 2016) 각종 해설서의 도움을 받아 나도 비슷한 해설과 주석을 달아보려고 시도했다.

② 『존재양식의 탐구』 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서론에서 6장까지) 원고를 나의 홈페이지 <필로나투>philonatu.com에 먼저 싣고 나머지 2부와 3부는 원고가 다듬어지는 대로 추후에 올릴 예정이다. <해설과 주석> 작업이 원래 더 오래 걸릴 일이었는데, 한글판 출간 덕분에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나의 <해설과 주석>은 전적으로 한 권의 책, 『존재양식의 탐구』 만을 위한 것이다.

③ 이 책 1장에서 16장까지 각 장 별로 해제 원고를 차례로 올리기는 하지만, 각 장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의 특성 때문에 개별 장을 따로 읽기가 힘들 수 있다.

④ 한글판 번역자에게 감사드린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번역이지만, 몇몇 용어 번역에 코멘트를 달거나 영어판 쪽수를 그대로 따른 것도 많다.

⑤ 인용 출처는 괄호 안 쪽수 (123)로만 표기했는데 영어판 출처는 숫자 앞에 * 표시(*124)를 했다.




존재양식 16장과 전체 결론

라투르 경제철학3: 도덕경제와 생태화





기초 개념들

기입과 서술, 그리고 대본 inscription/description/script

객체에 기입을 하는 행위가 곧 대본을 생성하는 것이며 그런 기입을 통해 객체는 연결망의 노드로 작용한다. 기입된 대본을 펼쳐 보이는 행위가 서술description이다.

메타배정자Metadispatcher

개체들 즉 부분들을 어떤 의도에 따라 배치하는 절대적 권력체이며 따라서 개별자인 부분보다 우월한 전체를 메타배정자라고 표현한다. 종교의 신이나 철학의 이데아 혹은 물리의 자연법칙도 여기에 해당하며 경제나 정치의 이성적인 기호들도 메타배정자의 양식이다.

총계정원장Great Books

각 계정들을 모아놓은 장부로서 모든 거래내역을 계정과목 별로 정리한 장부이다.

지시의 연쇄와 가치

지시의 연쇄가 사실facts을 허용하지만 사실을 절대적인 것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지시의 연쇄는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지기보다 가치와 다르다는different 점이 중요하다.

가치측정기

경제 이전 우리의 경험세계에서도 이해관계의 경로를 알려주고 공유하는 다양한 가치측정기가 있었다. 이는 애착 양식이 대본을 갖게 되는 경로이다. 이러한 대본은 원시 조상인류나 근대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비슷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차돌맹이를 숫자 표기 대용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고 주판이나 모델들을 활용하여 가치측정기를 확장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회계학의 총계정원장같은 역할을 했을 수 있다. 그것은 고대인이건 현대인이건 부자이든 가난하든 은행가든 걸인이든, 국가원수든 잡역부든 무관하게 누구나 자신이 가진 가치를 확인하는 자연스런 회계장부다. 그런 자연스런 회계장부는 근대인의 “이성” 이전부터 원래 있었다는 뜻이다.


수치에 중독된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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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상화된 낙하 물리법칙을 낙하운동 중에 있는 운동상태로 착각하면 안 된다. 추상적인 기학학의 세계를 구체적인 경험계와 이분화시키고, 그런 다음 추상세계를 경험세계 대신에 대체해버리는 방식이 화이트헤드가 말한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갈릴레오의 은유법인 기하학적 이성으로 짜여진 『자연의 책』을 자연 그 상태로 오해하면 안 된다.(634-4)

2. 물체의 낙하운동이 구체적인 자연이라면 갈릴레오의 낙하법칙은 추상화된 『자연의 책』이다. 경험의 자연은 존재의 지속을 보장하지만 추상의 자연은 자연에 대한 객관적 지시체[REF]를 생산하는 과학자들의 기입이다. 형이상학자는 그런 지시체가 추상화된 실재의 존재를 믿지만(실재론), 그렇다고 해서 추상화된 자연이 경험의 자연을 대신할 수 없다.

3. 만약 갈릴레오의 『자연의 책』이 아니라 경제화된 『자연의 책』일 경우 경제법칙이 경제의 재생산 양식을 대체해 버리는 권력을 갖게 된다.(644)

4. 총계정원장이나 회계장부가 생존에 도움될 수 있지만 생존을 대신할 수 없다는 뜻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인이 만드는 경제는 가치독립적 혹은 가치중립적 사실에 기반하여 가치를 수치로 환원(계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645) 이는 곧 수치화에 중독된 경제이며, 가치와 사실을 구분한다는 논리에 기반한 근대인의 경제학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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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기의 경제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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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가 아니라 총계정원장의 책 혹은 경제법칙의 시스템은 『자연의 책』이 갖는 권위보다 더 큰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제 총계정원장이라는 『경제의 책』은 “신용”credit의 책으로 되었다.

2. 신용원장이 경제의 책으로 되어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빚이 있는 사람이 신용원장을 주고 빚을 청산하고 싶어한다. 빚과 신용원장이 맞교환됨으로써 청산이 이뤄졌다 혹은 청산되었다라고 말한다. 등가물의 교환을 통해 말끔한 청산이 성립하여 이런 등가교환에 의한 청산이 경제의 전부라고 근대인은 생각해왔다.

3. 이런 근대인의 생각은 지구의 자원이 무한하다는 가정을 설정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지구라는 보물을 담보로 얻어낸 빚으로 우리 지구인은 200년 이상 잘 살아왔다.

4. 그러면 이제 지구에 빚진 막대한 채무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648)

5. 많은 지구인들은 빚을 청산하지 않고 생자로 떼먹으려 한다. 그것은 지구인 스스로 부도를 맞게 되는 상황이다. 이것이 기후변화 같은 지구 위기의 경제적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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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의 합리주의 경제학을 반박한다. - 양심의 거리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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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인은 소위 주관적 관심과 도덕 그리고 선악을 넘어서서 정연한 첫 번째 자연first nature의 질서를 굳게 확신한다.

2. 그리고 과학적 객관성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과학, 더 나아가 과학화된 경제학은 가치와 무관하다고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들은 모든 존재양식들이 객관체라는 가정에서 세워져 있다. 철학사를 통해서 합리주의자들이 지금까지 언급해왔던 존재양식은 독립적이고 불변하다는 존재론과 참과 거짓이라는 판명한 이분법의 방식으로 존재를 인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3. 라투르는 이런 근대인의 주장들을 전적으로 반박한다. 존재는 오히려 불변이 아니라 변화이며 절대적이 아니라 관계적이다. 라투르의 표현대로 존재는 다른 존재(타자)와 항상 번역의 과정을 거치면서 추상 관념이 아닌 생존 기반의 적정성 및 비적정성 조건으로 성립된다.(652)

4. 번역되는 존재양식은 처음부터 도덕과 가치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라투르가 가장 역설하는 명제이다.(653)

5. 그래서 도덕과 가치는 먼저 발견된 사실을 평가하는 주관적 태도가 아니라 사실의 존재 이전부터 사실에 결착된 채 변성하고 변이를 거치는 확장된 존재양식이다.

6. 예를 들어 재생산[REP] 존재양식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시공간으로 다른 존재자로 연계되며 도덕을 직접 의미하지 않지만 다른 존재자를 생성하면서 새로운 의미의 도덕성을 발생한다는 데 있다.(653)

7. 라투르에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리고 비인간도 역시 객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이 생성된 존재자들이다. 왜냐하면 인간-비인간은 타자(사물 포함)에 대한 반응을 피할 수 없으며 그런 피할 수 없는 반응이 곧 책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책임의 상황이 “양심의 거리낌” scruples으로 드러난다(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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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양식의 존재자는 원래 가치와 분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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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시의 연쇄[REF] 존재양식도 사실facts의 존재자를 품고 있지만 근대인이 말하는 단절된 합리주의적 사실과 다르다. 그 존재의 연쇄작용으로 발생된 도덕적 선악을 결정할 수 있는 발생학적 “사실”(따옴표에 주목)의 존재양식이라고 라투르는 말한다.(653)

2. 사물에 가치가 붙어있다는 뜻이다. 라투르가 말하는 [존재양식]의 존재자들은 원래부터 가치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3. 사람들은 객체 사물들의 존재양식 즉 기술, 종교, 법, 사물, 픽션 등의 결과물에 대해 그 안에 품어져 있는 도덕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라투르의 생각이다.(654)

4. 존재와 당위 : “존재”와 “당위”는 철학사 텍스트에서처럼 대립된 이분화의 관계가 아니라 모든 존재자가 타자의 존재자를 통과하면서 발생된 결합체이다.(654)

5. 존재자들은 서로에게 고립될 수 없으며 불변의 동일성도 아니다. 단지 생존을 위해 타자를 통과하는 과정 자체이며, 그런 과정이 바로 절합articulation이라고 앞 장에서 설명되었다. 절합은 도덕적 가치의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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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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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과학의 존재자의 경우 사실과 가치의 문제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라투르에서 과학이 갖는 가치는 과학에 대한 관심interests에서 비롯하며, 관심은 다른 타자와 연결하여 사물-인간-사물-인간들 사이를 잘 동작하게 해주는 관절과 같은 절합의 역할을 한다.

2. 절합을 통해 사실과 가치 혹은 존재와 당위가 하나의 도덕적 연결망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돌맹이, 고양이, 매트나 파이프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물체에서도 절합이 잘 작동된다. 그래서 개천의 돌맹이 하나, 스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패트병 하나마다 절합이 작동되어 그 하나하나마다 소중한 가치가 생성된다. 이것이 근대인의 시선과 완전히 다른 라투르가 말하는 경제적 가치의 핵심이다.

3. 불행히도 근대인이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경제학은 존재와 당위를 대립시키고 사실과 가치를 분리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모두의 객체들의 연결고리 즉 “절합”을 붕괴시켰다.(655)

4. 절합의 작동이 상실된 근대인의 경제학이 오늘날 지구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라투르는 확실하게 진단한다.
(절합에 대하여) articulation을 ‘절합’이 아닌 ‘마디’로 번역하면 더 좋을 듯하지만, 한글판의 번역용어를 그대로 따른다. 어차피 ‘절합’이나 ‘마디’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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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전달자로서 도덕 존재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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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인을 자기 안에 갖고 있는 자기원인causa sui의 존재자가 바로 실체로서의 존재자이다. 그런 자기원인이 바로 목적이며 그 목적은 자기동일성을 확보하는 가치의 기준으로 된다는 것이 전통 존재론의 철학이었다. 한편 라투르 존재양식의 존재자는 자기 밖의 목적을 가진 타자성과의 연결과 절합을 통해 가치가 스스로 발생한다고 라투르는 강조한다.

2. 그런 타자성의 가치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발현되는 것이 “양심의 거리낌”이며 도덕의 전달자라는 존재양식인 도덕의 존재양식[MOR]을 낳는다.

3. 변신의 존재양식[MET]이 정신의 전달자psychophors를 인정했듯이, 도덕의 전달자도 가능하다는 것이 라투르의 전략이다.(655) 도덕 존재양식의 존재자는 객체들의 연결자이면서 동시에 도덕의 전달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4. 도덕의 전달자는 목적과 수단, 주어와 목적어가 연쇄적으로 결합되어 복잡성이 확장된 연결망들의 존재양식이며, 라투르는 애착(관심와 이해관계)의 존재양식[ATT]과 조직(대본)의 존재양식[ORG]와 함께 도덕의 존재양식[MOR]을 네 번째 그룹Fourth Group으로 묶었다.(656)

5. 어떤 존재양식에 결합되어 있는 [도덕] 양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양식의 존재자가 최적합된 조합으로 살아있는 것이며 그런 최적합이라는 평가를 아는 것이다. [MOR]도덕의 존재자의 최적합화는 마치 진화의 선택압처럼 작용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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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역전malign Inversion의 사례 : 종교의 존재자를 천상에 배치시키고 과학의 존재자를 지상에 배치시킴으로써 지상과 천상의 전통적인 이분화 사유로부터 종교와 과학을 이분화시키는 확장된 오류가 바로 악성 역전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악성 역전은 교회를 절대권력의 지위인 메타 제도로 간주한 근대인의 오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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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는 도덕적이라는 신유물론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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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인은 이성으로 구축한 윤리학이나 의무론을 통해서 모든 도덕적 언명을 다 포괄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도덕은 윤리학을 통해서만 그 현존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근대인의 도덕은 합리주의 윤리학이 아니더라도 도덕을 품고 있는 존재자로부터 도덕이 방출되고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방사물질을 아무리 막아도 방사능이 자연적으로 배출되는 것과 같다.

2. 거꾸로 말해서 도덕이 방출되는 존재자에 대해 (존재자의 호소에 대해) 우리는 응답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응답이 바로 ‘책임’에 해당한다.(658-9)

3. 객체로서의 모든 존재자는 도덕적 존재자이다. 인간도 그렇지만 비인간도 도덕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 비인간 모두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feeling responsible

4. 물질도 도덕적이다. 이런 점에서 라투르는 자신이 생각하는 유물론 혹은 신유물론을 “두번째 경험주의 유물론”이라고 표현한다.(660)

5. 라투르의 객체론은 전통적 의미의 유물론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물론이라는 기준으로 굳이 분별하자면 라투르의 객체론을 “새로운 경험주의 유물론” 정도로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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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 “객체”를 이해하기 위한 객체 일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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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투르 철학의 기초는 주체-객체 이분법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하는 것에서 올려졌다.

2. 객체는 피동형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다. 즉 주체를 주관으로 하고 객체를 객관으로 하는 그런 이분법적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3. 인간이 객체를 구성한다는 구성주의는 인간중심주의의 굴레에 속한다. 객체도 객체 스스로 세상을 구성하기 때문에 인간 중심의 사회구성주의라는 개념으로 객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라투르 후기 철학의 요점이다.

4. 여기에선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본 객체가 아니라 인간중심주의가 아닌 비인간의 객체로서 "객체"를 다루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하먼은 라투르의 비인간 객체를 객체지향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레이엄 하먼.「네트워크의 군주: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

5. 객체지향object-oriented이란 무엇인가?

6. 중력의 예를 들어보자.(앞의 그림 참조) 행성의 운동과 중력에 의한 빛의 굴절이 중력의 존재를 먼저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성의 질량에 선제하여 중력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 중력이론의 핵심이다.

gravity of Einstein


7. 뉴턴의 고전역학 혹은 칸트인식론에서 공간이 먼저 선제하고 사물이 그 공간에 들어와 작용하는 것이지만, 아인슈타인에서는 공간이 사물의 질량에 따라 나중에 형성된다는 점이 공간-객체 관계의 차이다.

8. 여기서 중력 대신에 객체라는 말을 대입하면 객체를 좀 더 이해하기 편하다. 세상의 인식론적 틀이 먼저 있어서 그 틀 안에서 객체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객체가 있기 때문에 객체의 존재론적 무게에 따라 중력이라는 인식론적 틀이 설명될 뿐이다.

9. 모든 객체는 고립되거나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섭동된다. 그래서 객체는 협상과 외교의 행위자이다. 그런 행위자를 라투르는 실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10. 이런 점에서 모든 실재는 정치적이다. 모든 정치가 인간적인(인간중심적인) 것은 아니며 인간-비인간에 간섭받는다.

11. “객체 지향”이라는 용어는 사변적 실재론과 객체지향 존재론을 전개한 하먼Graham Harman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따온 것이다.(Harman 2022, 187) 물론 하먼Graham Harman의 ‘객체 지향“ 용어를 이용하여 라투르의 객체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12. 라투르가 객체지향이라는 용어는 그의 존재양식 12장 정치철학에서 잠시 나오는데, 거기서 객체지향이란 정치적 이슈(문제, 쟁점 등)의 무게가 정치라는 틀을 간섭하는 것이지 정치라는 합리적 틀이 이슈를 규정하는 것이 아님을 라투르는 강조한다.

정치는 사실물의 matters of fact집합이 아니라 관심과 우려의matters of concern 집합체이다. (Latour, Modes of Existence, p.337)

13. 여기서 사물은 정치적 이슈에 해당하며, 그런 사물의 무게(물리학적으로 말하면 "질량"임)에 따라 중력이 만들어지듯이, 정치적 이슈의 무게에 따라 정치연결망이 형성된다.(라투르 존재양식 한글판 493쪽)

14. 라투르는 객체 개념을 차용하면서 컴퓨터 공학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존재양식 한글본 492쪽), 실제로 객체를 설명하는 라투르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아인슈타인의 중력 개념을 통해 객체의 우선성을 판단하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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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지향의 용어를 하먼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용어에서 따왔다는데, 컴 프로그래밍에서 사용되는 “객체지향” 뜻은 무엇인가? - 몰라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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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객체는 연산코드와 자료구조의 합으로 된 집합체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연산코드로 된 변수들의 묶음이 있고 그 묶음 안에 그 변수들을 어떻게 어떻게 작동하게 하는 함수가 항상 같이 붙어 있는 형상을 객체라고 한다.

그리고 객체지향이란 이런 객체들 간의 관계를 말하는데, 객체들 사이의 집합체, 상호의존성, 하위 집합체에 어떻게 상속되는지의 관계를 객체지향이라고 표현한다. 특히 상속이라는 객체지향의 성질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x와 y라는 변수들의 묶음이 있고 그 변수들을 작동시키는 y=2x+3이라는 함수도 그 묶음 안에 결착되어 있다면 그 묶음의 단위는 x와 y 자리에 무엇이 들어와도 항상 객체로 활성화된다.

그리고 그런 함수의 묶음이 통째로 하위 묶음으로 연결된다고 하더라도(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는 이런 연결을 “상속”이라고 부른다) 그 묶음의 함수값이 그대로 적용된다.

상속관계에서 상속의 내용을 추상화한 것이 클래스class이다. 클래스는 추상화abstraction이다. abstraction이 기본형이다. 추상화의 abstraction은 플라톤 이데아처럼 질료가 아직 붙지 않은 형상의 구조와 비슷하다.

이런 추상적 형상에 질료가 채워지면서 파생된 구체의 개별체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기본형의 추상적 조건들을 그대로 상속한 파생형을 Implementation(구현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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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의 도덕 혹은 합리주의 윤리학의 귀결(도덕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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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편적 도덕이 존재하며 그것을 추구한다.

2. 그들은 자신의 도덕을 타인(원주민들; 타자의 존재자)의 도덕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3. 당위와 사실을 구획해야 한다면서 사실의 근거를 천상에서 찾는 도덕 보편주의를 믿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위가 사실로 환원될 수 있는 절대적 보편성의 기준이 불가능하다는 모순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근대인은 “도덕적 상대주의”로 물러나게 되었다.(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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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존재자의 사양specifications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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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1]

1. 우리는 의식적이지도 않고 의도적이지도 않은 도덕감의 발현을 보여준다. 그런 도덕감이 발로되어 경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양심의 거리낌이다.scruple (662) 이는 마치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중에서 측은지심에 비유될 수 있다.

2. 도덕 존재양식의 특징에서 양심의 거리낌으로 발현되는 방식은 “도덕적으로”라는 부사 형태이다. 도덕의 명제는 항상 다른 명제를 연결하여 재생산되는 양식이라는 점이 아주 독특하다.

3. 객체에 대해 우리는 이미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그런 빚에 대한 반응이 양심의 거리낌scruple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664)

[사양2]

1. 도덕의 존재양식은 이성의 윤리학으로 갇혀 있지 않으며, 도덕적 존재자는 누군가의 소유로 결코 제한될 수 없다.

2. 모든 인간-비인간에게 응답이 되면서 (즉 책임을 공유하면서) 모든 존재자는 나와 무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사적 문제에 대해 그것 즉 기후위기 문제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665)

[사양3]

1. 존재자들이 품고 있는 도덕의 무게는 서로 비교될 수 없다.왜냐하면 공통의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라투르는 이런 특징을 도덕적 존재자의 “통약불가능성”이라고 표현했다.

2. 통약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도덕적 존재자들은 서로에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인 사양의 하나다.

3. 근대인이 만든 도덕학의 하나가 공리주의 윤리학이다. 공리주의는 개별 도덕적 존재자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양심의 거리낌”을 무시하고 모든 존재자들 사이의 도덕적 감각들이 서로 통약가능하다는 강한 신념을 갖는다.

4. 공리주의자의 도덕적 신념도 매우 강하면서 더 나아가 그들의 입장에서 도덕의 무게를 평가하고 그들의 척도로 중요한 도덕과 중요하지 않은 도덕을 구분하여 차별한다.

5. 강제된 강력한 도덕의 신념은 도덕적 양심의 거리낌의 존재양식과 전혀 다른 사실의 윤리학에 속한다. 이런 일방적 도덕 신념은 객관적이라는 명분으로 경험을 상실하고 초우러적 관념에 빠진 도덕주의moralism일 뿐이다.

6. 도덕의 존재자는 초월이 아니라 최적화의 소산물이다.(666)

moral modes of L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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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모순된 배리paralog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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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편으로 양심의 거리낌으로 타자를 응대하는 존재자로 가득찬 경제의 무대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도덕의 무게를 측정하는 공통의 척도가 없다하더라도 근접의 방식으로 지시양식을 통해서 계산하려는 존재자들의 비워진 경제의 무대도 있다. 비워진 무대라는 뜻은 합리주의 경제학은 있되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경제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반대되는 양면성의 경제 양식이 오늘날 경제의 배리이다.

2. 가득찬 경제의 무대의 존재자는 계산으로 경제를 다 설명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타자에 대한 빚을 인지하고 있지만, 비워진 경제의 무대의 존재자는 논쟁 없는 사실/가치로 경제가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빚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아예 관심도 없다.

3. 자연을 물질로 간주하는 경제와 그런 동일성의 경제이론이 아니라 타자에 책임감을 갖는 경험적 경제의 차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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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배리)에서 조정으로, 라투르의 경제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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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착 양식, 조직 양식(대본), 도덕 양식을 이해하려면 그것에 연결된 지시의 기입inscription을 이해하면 된다.

2. 지시의 기입과 그 기입장치는 경제가 안고 있는 배리된 두 측면을 하나로 묶어 설명하려는 조치이다.(668)

3. 이성의 사악한 더블클릭으로 경제를 물질화하여 경제를 분열시킨 것으로부터 불평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라투르는 말한다.(669)

4. “경제의 문제는 객관적 지식(의 차원)이 아니며 객관적 지식이었던 적도 없다.”(669) 경제는 이성으로 판단하는 지시체를 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 이제 경제는 애착 존재양식의 다원주의와 타자성과 통약불가능성[ATT], 조직의 결과가 아닌 과정의 흐름들[ORG], 끊임없는 변이과정을 통해 목적 없이 수행된 최적화의 도덕적 갱신들[MOR], 이 세 가지 존재양식을 전개하여 경제의 [배리]를 [조정]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외교관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라투르의 제안이다. 그런 외교관의 일은 바로 경제인류학의 과제다. 라투르 자신도 그런 외교관의 임무를 다하고 있지 못하다고 실토한다. 그만큼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만큼 우리의 빚이 많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6. 애착, 조직, 도덕의 존재양식을 무시한 채 오로지 근대인의 합리성으로 재구성한 경제를 과학이라고 치부해 왔다. 실제로 경제과학의 지시유형은 객관화라는 명분으로 물질화된 불평등의 원천일 뿐이다. 그런 물질 지식에서 벗어나 이제 애착, 조직, 도덕의 존재양식과 지시기입의 존재양식을 결합한 새로운 과학을 지향하는 것이 라투르가 제안하는 경제인류학이다.(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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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법칙과 같은 경제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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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는 두 번째 자연second nature에 속하고 우리는 그런 두 번째 자연에 거주하는데, 그런 자연을 “수정궁”crystal palace으로 비유하고 있다.

2. 합리화로 직조된 근대 경제학은 첫 번째 자연을 온통 물질화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두 번째 자연을 물리법칙과 같은 경제법칙으로 재구성하고 싶어 한다.(672)

3. 그렇게 만들어진 경제는 타자와의 연결망인 애착, 조직, 최적의 도덕성을 무시한 채 자연의 절대적 질서와 그 질서를 계산할 수 있다는 초월적 메타배정자로부터 부여받은 기계적 인과법칙을 발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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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적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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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 언어, 심리처럼 경제도 자기만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영역은 없다.(674)

2. 경제학은 이제 생태학과 공유되어야 한다.

3. 생태학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인간만의 합리성이라는 제한된 존재양식에서 벗어나서 자연과 경제를 하나로 묶는 내재적 활동(행위자의 수행성)을 인정하는 데 있다.

4. 구원의 경제학이나 신의 경제학이라는 명분늬 권력과 합리성이라는 근대인의 권위를 갖는 경제학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런 탈출로부터 생태학적 경제학이 가능하다고 라투르는 강하게 말한다.(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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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국가라는 폭군에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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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인의 경제학은 진짜 자유로운 경제학을 맛본 적도 없다고 라투르는 말한다. 경제학을 이성으로 만든 근대인은 불행히도 이도 저도 피할 수 없이 양쪽의 폭군 사이에서 휘둘리고만 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시장”이라는 폭군과 보이는 손으로서 “국가”라는 폭군을 말한다. 그 두 폭군 사이에서 경제는 폭정에 시달리고 있다. 마치 페스트와 콜레라 외에는 선택지조차 없이 둘 중 하나의 질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과 같이 말이다.

2. 근대인은 경제의 섭리처럼 작동하는 시장과 국가를 법칙이나 신 혹은 (라투르 고유개념인) 메타배정자라는 최상의 지위로 승격시켰다. 그렇게 승격된 경제학의 모델은 물리학 모델과 비슷했으며, 세속적 종교의 지위까지 넘보게 되었다. 세속적 종교화에 이른 경제의 대표적인 모델이 극심한 불평등을 낳은 자본주의이다.

3. 시장과 국가 양쪽의 폭군은 근대인에게 메타배정자 구실을 해왔다. 둘 사이의 차이가 있다면 국가는 모든 경제 폭정을 앞에서 끌고 가고, 시장은 모든 경제 폭정을 뒤에서 밀고 간다는 차이일 뿐이다.(677)

4. 보이는 손이건 보이지 않는 손이건 폭정의 “손”은 존재한다는 환상을 심어준 것이 근대 경제학이다. 우리는 이제 시장과 국가라는 손의 유령과 망령에서 튀어 나와 경제의 신, 경제의 메타배정자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라투르는 강조한다.(677)



라투르의 에필로그 : 경험철학과 생태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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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양식을 15개 나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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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양식을 15개 범주로 체계화한 것에 대하여 라투르는 자기 고백을 한다. 근대인의 이성적 체계화를 반박하면서 “체계적인 정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체계적 접근의 작은 소소한 이점이 있다.”

2. 15개 존재양식 그리고 5개의 그룹화라는 방식은 방법론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준객체와 준주체를 이해하기 위하여 존재양식의 그룹화는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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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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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투르가 말하는 존재양식은 양식good sense이 아니라 상식common sense의 경험이다.(688)

2. 여기서 경험을 설명하기 위하여 존재자의 다양성을 본문에서 충분히 서술했다. 존재는 형식화된 존재의 틀 안에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념의 향방을 이끄는 전치사처럼 존재자에도 전치사가 보이지 않게 붙어 있어서 존재자가 타자를 만나는 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양식이 발생된다. 여기서 그런 다양하게 발생되는 양식을 다양식plurimodal이라고 하고, 존재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비인간의 타자를 만나는 것을 경험이라고 라투르는 표현해 왔다. 그런 경험의 접근법이 곧 경험철학이기도 하다.(694)

3. 그래서 존재양식 또한 근대인이 만든 기하학적 존재와 다른 구체적인 경험철학의 존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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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과 소통하는 외교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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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결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다고 한 언명에 더 나아가 앞으로도 근대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라투르는 강하게 표현한다.(691)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전체, 처음부터 끝까지 언쟁되었던 근대화의 전선Modernization Front은 우리를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근대화의 전선을 간단히 다시 정리해보면 객관과 주관, 이성과 비이성, 낡은 것과 진보적인 것, 과학과 문화, 국지성과 세계성을 구별하는 이분법의 전략을 말한다.(691)

3. 근대화 전선은 결국 기후위기나 경제파국 혹은 생태파괴 등의 지구위기로 치닫게 되었다. 근대화와 세계화 혹은 보편화라는 명분으로 근대인은 승리했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지구의 가이아에 청산불가능한 막대한 빚을 지고 만 것이다.

4. 우리가 생존하려면 지구에 진 빚을 갚기 시작해야 한다. 인간-비인간의 타자에 대한 “양심의 거리낌”, 즉 내재된 생태적 도덕과 책임을 겉으로 발현시키면서 빚을 갚아가야 한다.(700)

5. 이런 변화를 라투르는 근대화 대신 생태화라는 언명으로 표현한다.

6. 개인 컴퓨터를 돌리는 운영체제는 윈도우즈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윈도우즈 없으면 컴퓨터를 아예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리눅스나 우분투 등의 운영체제도 있다. 운영체제를 바꾸면 아주 불편하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691)

7. 마찬가지로 근대화 대신 생태화의 변신이 가능하다고 라투르는 강조한다. 물론 불편하고 적응도 안 되어 어색하겠지만 진짜 지구 위기에 닥치면 변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투르는 이를 위하여 근대인의 양식을 무조건 거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대적 이성으로부터 취할 것은 취하면서 조율하고 조정하면서 새로운 존재자의 경험철학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8. 이런 조율과 조정의 행동을 외교적 행동이라고 한다. 타지역으로 이동하여 타자와 만날 때 서로의 이해관계 조정을 위해 외교관이 필요하듯이, 생태화로 가는 땅에서 우리 모두 외교관의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고 한다. (695)

라투르의 존재양식 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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