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밥꽃양 리뷰
날짜: 2024-02-10 · 조회: 402
글쓴이: 최종덕(독립학자/철학, philonatu.com) 2024년 2월 22일 영화리뷰 임인애 감독의 임인애 감독의 이라는 영화를 봤다. 1998년 여름부터 2000년 봄까지 현대자동차 노조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을 그린 다큐 영화다. 대기업의 정리해고 칼날이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찌르니, 그 칼날의 상처들, 치유되기 어려운 상흔의 보고서다. 남성 중심의 거대 노조 앞에서 무력하지만 강력한 엄마이며 아내들의 처절한 이야기가 정제되지 않고 노출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단순한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다. 기업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는 노조의 투쟁과 타협 그리고 중재라는 묘한 심리들이 충돌된 채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겹 스크린을 찢어 내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겉으로 보이는 혼재는 모순의 엉킴이 아니라 변증의 얽힘임을 느낄 수 있다. 기업과 노조의 충돌, 여성과 남성의 갈등, 권력과 현실의 변신, 희망과 절망의 괴리들이 혼재된 듯 얽혀 있는 불연속 내러티브를 재생산하는 영화다. 스크린에 비춰진 불연속과 단절의 고통들은 감독의 수정체를 통해서 연속과 연결의 내러티브로 변성되었다. 이 영화는 그래서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을 서술하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은 공장에서 혹은 논밭에서 땀 흘린 일의 대가로 얻는 숭고한 스토리의 소재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에는 ‘밥만 먹으면 되지 뭘 또 반찬까지 먹으려 드냐’는 식의 조롱섞인 권력 아이러니도 묻어있다. 마지막까지 남은 144명 여성노동자들 한 달 여 간의 천막농성과 단식투쟁이 ‘중재’라는 단어의 은폐와 ‘타협’이라는 단어의 위선에 밀리고 밀려 끝났다. 끝은 없었고, 그 상흔은 지워질 수 없었다. 결국 그녀들은 토로한다. “우리가 뭐 밥이가?” 자조적으로 던지고 만 한 마디가 아니라, 칼날이 베고 들어온 상처에서 곪아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가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고통의 파열음이었다. 감독 임인애, 그가 만든 이 영화는 아픔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객석-내부 관객들을 계몽하려는 메시지 대신에 자아의 망막을 객석-외부 보행자들에게 투사하여 그들 보행자 스스로 아픔을 공유하도록 하는 전술을 펼친다. 감독 혼자서는 그런 전술로 승리하기 어렵다. 감독이 혼자서 창조한다는 영화예술은 계몽의 작은 진지 몇 개를 탈환할 수 있을지언정 공감이라는 저 언덕의 생존지를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임인애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창조하면서 동시에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노동자들, 그리고 현장 투쟁자들이 임인애 감독을 거꾸로 창조한다. 작가는 세계를 창조하며 동시에 그 세계가 작가를 창조한다. 창조는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일 때 비로소 창조가 창조적일 수 있다. 그러했기에 영화에서 그 공감의 전술이 먹힐 수 있었다. 프랑스 예술철학자 수리오(Étienne Souriau, 1891~1979)에서 예술가가 대상을 창조하는 행위는 대상에 의해 예술가가 창조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창조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호적인 섭동의 결과라는 것이 수리오 예술철학의 핵심이다. 수리오는 그런 양방향의 창조를 ‘창설’(instauration)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표현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자신이 예술가로 일컬어지기를 싫어하겠지만 수리오 철학의 창설을 수행한 섭동의 행위예술가였다. 말과활아카데미라는 작은 공간에서 몇몇이 모여 본 영화였지만, 그 객석의 크기는 더 없이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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